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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부자들의 선택

입력
2011.11.0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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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치고 추위 닥치면 맨해튼 주코티공원에 진을 쳤던 시위대 본진도 겨울 낙엽처럼 흩어져 버릴지 모른다. 방한복 속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텐트에서 나온 시위자는 "우리는 겨우내 여기 머물 각오가 돼 있다"고 힘을 줬다. 하지만 곧 모든 미국인이 따뜻한 캐럴 속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누군가 타워크레인에라도 올라가지 않는다면, 반(反)월스트리트 시위는 시들해질 가능성이 크다.

'상위 1%의 탐욕에 분노하는 99%의 행동'이라는 구호로 서민들의 글로벌 연대를 모색했던 이번 시위의 불발은 일찍이 예견됐다. 국내에서도 반값등록금부터 저축은행 피해보상까지 이런저런 구호를 엮은 '99%의 행동'이 거리에 등장했지만 주장은 산만했고, 풍경은 생경했다. 아직 분노의 압력이 폭발의 임계점에는 이르지 못한 셈이다.

더 커지는'부자 시스템' 반감

하지만 대오는 흩어져도 '1%의 탐욕'에 대한 반감이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불만과 좌절은 마그마처럼 지각 밑에서 들끓으며 폭발력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최근 프랑스 상원 선거에서 50여 년 만에 좌파연합이 승리한 데 이어, 유럽연합(EU) 각국 선거에서 여당의 잇단 패배는 잘못된 시스템과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가 결코 신기루가 아님을 보여준다. 국내 정치판을 뒤흔든 안철수 바람과 여당의 참패로 끝난 서울시장 보선 역시 21세기 글로벌 반체제 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거리에서든, 투표장에서든 거대한 반체제 기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느새 빈민으로 전락해버린 중산층이나, 일자리를 잃고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청년들이나, 사회 안전망에서 배제된 빈민들의 분노는 승자독식 경제시스템과 99%의 부를 독식하는 1%의 부자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문제는 선거 같은 제도권 정치과정만으로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반체제 요구를 잠재우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극단적으로 현재의 어떤 정부라도 지금의 경제시스템을 뒤엎거나, 1%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해 99%에게 나눠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의 수십 조원에 달하는 통 큰 기부와 부자 증세, 상속세 폐지 반대 운동의 의미가 되새겨지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로 요약되는 이들의 행동은 부자의 알량한 선의나 위선을 넘어선다. 일찍이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를 진단한 조지 소로스의 '열린사회(Open Society) 운동'과도 일맥상통하는 이들의 행동은 제도 정치로 풀지 못할 체제위기를 피하기 위한 현명한 부자들의 전략적 선택이다.

서구 사회에서 부(富)의 사회 환원은 부에 대한 반감을 완화하고 부자들에게 사회적 인정과 존경을 부여하는 순기능을 나타냈다. 워런 버핏이 빌 게이츠에게 일찍이 "부는 흔히 후손에 의해 버려지기 마련이므로 자선 목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저서 을 소개했다는 얘기는 그들이 부의 한계효용을 극대화하는 현명한 기부의 전통을 재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우리에겐 아직 통 큰 기부의 전통도, 그것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나 존경의 태세도 빈약한 게 문제다. 이러다 보니 어떤 부자도 부와 진정한 품격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현명한 행동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부의 한계효용 높일 새 선택을

중국 황제의 침전에도 침대의 크기는 고작 3평이 채 안 되고, 왕조를 세워도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하는 7언절구면 500년 역사가 뜬구름처럼 사라질 뿐이다. 부자들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속세율 인하법안에 목을 맬 게 아니다. 부의 한계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절박한 선택이 우리의 큰 부자들 앞에 놓여 있다. 부자들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게 좋겠다. 그러면 사회는 그 기여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강구해 나갈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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