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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의 플래시백] <7> "국회의원 시절 '장관님'이라 부른다고 동료의원 핀잔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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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의 플래시백] <7> "국회의원 시절 '장관님'이라 부른다고 동료의원 핀잔 받아"

입력
2011.10.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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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는 묻지 마. 물론 투표는 했어. 소중한 권리니까. 하지만 정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내가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 요즘 정치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금배지 한번 달았던 죄로 정치판이 시끌시끌할 때마다 이런저런 말을 좀 해달라는 청을 받을 때가 있어. 그럴 때마다 못들은 척 해버리지. 내가 뭐라고 그런 말까지 하고 다니냔 말야. 어쩌면 내가 정치라고 여기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정치라고 생각하는 게 조금 다른 건지도 모르겠어.

(옛날 신문 더미를 들추며) 이게 언제 적 기사야? 1991년 11월 11일… 딱 20년 전이구먼. (기사 제목이 '14대 총선 출마요? … 요즘 신문 정치면 아예 안봅니다'다.) 이것 참 쑥스럽네. 이렇게 인터뷰 해놓고 반 년도 안 돼서 국회의원이 됐으니. 근데 당시엔 그랬어. '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닦아 놓은 이미지가 있는데다 '최불암 시리즈'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 한창 유행할 때였으니까. 정치판에서 가만 놔두질 않더라고. 어휴 얼마나 끈덕지던지.

사실 정치권에서 날 부른 건 참 오래됐어. 13대? 아냐 훨씬 전이지. 마흔 살쯤 됐을 땐가, 박정희 시대의 끄트머리니까 78년이나 79년이나 그 무렵이었을 거야. 중앙정보부에서 누가 찾아와서 그러더라고. "당신을 천거하는 사람이 많다"고. '수사반장'이 인기 있던 때야. 화들짝 놀라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 그랬지. 대놓고 못한다고 말하기는 힘든 시절이었거든. 우선 빠져나갈 궁리를 할 시간을 좀 벌어놨지. 그리곤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10ㆍ26이 터진 거야. 그래서 없던 일이 됐지 뭐. 뒤에도 간간이 부르는 데가 있었지만 다 거절했어.

결국 내가 정치에 발을 담그게 만드는 데 성공한 사람은 정주영 회장이지. 그 무지막지한 추진력에 당하고 말았어, 허허. 전부터 친분이 있던 정 회장이 92년 초 전화를 걸어서 "통일국민당 창당 발기인 명단에 당신을 넣겠다" 그러는 거야. 솔직히 그게 뭐 하는 건지도 잘 몰랐어. 차마 딱 잘라 거절은 못하고 얼버무렸어. 그리고는 마침 일본에서 드라마 찍을 게 있어서 도망가 버렸지. 나갔다 오면 없던 일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돌아와 보니까 내 이름 석자가 신문에 적잖게 실렸드만. 문화면이 아니라 정치면에 말야.

그때만 해도 정치인이 될 생각은 없었어. 이왕지사 정 회장을 도와드리기로 했으니 못이기는 척 몇 번 자리만 채워줘야겠다는 정도로 생각했지. 정당 연설회 같은 데서 몇 번 단상에 올라 '도와주십쇼' 그렇게 얘기했어. 나 말고 정 회장 말이야.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내가 전국구 후보 4번이래. 역시 비례대표가 뭔지도 잘 모르는데 말야.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총선을 치렀어. 그리곤 국회의원이 됐지. 모든 게 일사천리,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일이야. 정 회장이 없었다면 국회의원 최영한(최불암의 본명)은 영영 없었을 거야.

주변에서? 찬반이 갈렸어. 아내는 "당신이 무슨 정치를 안다고 국회의원을 하냐"며 극구 말렸지. 이왕 된 거 열심히 해보라는 사람들도 있고. 한 친구가 진지하게 바른말을 하더라고. "전국구는 사퇴해도 같은 당 사람이 의원직을 승계하게 되니 다른 사람한테 물려주고 넌 무대를 지켜라" 하고. 선거 기간 함께 뛰어준 것으로 정 회장에 대한 도리는 했으니 그만 본래 위치로 돌아가라는 귀한 충고였어. 지금 생각하니 참 근사했을 것 같아. 그렇게 내 자리로 돌아왔으면 말야. 근데, 솔직히 그땐 욕심이 생기더라고. 한번 열심히 해보자, 하는.

우선 정 회장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정치 얘기 하려면. 정 회장이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어. 특히 사극은 마니아였지. 78년 방송된 사극 '정부인'을 보더니 출연진을 불러 밥을 사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했어. 그리고 80년 기업드라마 '야망의 25시'를 하면서 가까워졌지. 정 회장이 '전원일기'에 출연할 뻔한 적도 있어. 정 회장도 빈농의 자식이라 농촌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 드라마에 나와서 나하고 농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 무산됐어. 녹화 2,3일 남겨 두고 MBC 사장단 회의에서 그렇게 결론이 났다고 하더군.

난 정 회장이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는 걸 80년대 말에 알았어. 중국을 방문하는데 나를 문화 특보 비슷한 개념으로 데려갔지. 가서는 그쪽 총리나 공산당 관계자들을 주로 만나. 기업인이라기보다 정치인의 모습이었지. 여튼 한 번 뜻을 정했으면 물불 안 가리는 게 정 회장 스타일이잖아. 92년 대통령 선거 때 얘기야. 대관령을 헬리콥터 타고 넘어가는데 추락할 만큼 날씨가 사나웠어. 모두들 돌아가자고 하는데 정 회장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라"고 하는 거야. 세 번이나 대관령을 넘으려다가 실패하고 결국 골짜기에 내리는 데도 낯빛 하나 안 변하더군. 난 그런 에너지가 한국 정치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어.

금배지 달고 나서는 문화 쪽 일에 전념했어. 배우로 지내면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문제가 많았거든. 근데 막상 국회에서 일하려니까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담당 공무원들이 상식적인 얘기도 못 알아듣는 거야. 답답했지. 서류 밖의 문화 현장에 대해선 완전히 무지했어. 당시 이슈가 된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 있냐고 물었더니, 거기 50명쯤 있었는데 한 명도 없더군. 내가 질문을 해야 하는 처지인데 차근차근 설명을 할 때가 많았어. 그런데 동료 의원들은 오히려 그런 내 태도를 문제 삼더군. 이를테면 "장관!"이라 부르지 않고 "장관님"이라고 부른다고 말야. 나보다 한참 선배라서 그런 건데….

공무원들은 다 꽉 막혀 있고 금배지들은 다 권위적이라는 얘기가 아냐. 안 좋은 모습만 부각되는데, 국회의원치고 최소한 게으른 사람은 없어. 정주일(이주일)씨 있잖아. 그 사람도 얼마나 열심히 했다고. 국정감사 때 되면 보좌관들이랑 머리 싸매고 이슈를 만들어 내는데 내가 도저히 못 따라갈 지경이야. 국회의원 관두고 한참 뒤에 비행기 안에서 ○○○의원을 만난 적이 있어. 이 양반이 나보다 나이도 많고 야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인데 나한테 막 사과를 해. 세비를 받는 처지에 비즈니스석에 탔다고.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어찌나 미안해하던지.

알다시피 정 회장이 대통령 선거 나왔다가 낙선한 뒤로 국민당은 와해됐어. 그리고 거의 '자동케이스'로 민자당에 흡수됐지. 국회의원 관둘까 고민도 했는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부르더구만. "국민이 당신을 의회에 세운 거다. 국민의 뜻을 거역하겠느냐." 딱 그렇게 묻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 그래서 계속했지. 내 욕심인지 몰라도 정말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15대 총선에서는 여기(영등포)에서 지역구로 재선에 도전하게 된 거야. 결국 패했지만.

선거 운동할 때부터 느낌이 왔어. 상대방(김민석 전 의원)의 선거 전략이 너무 좋았거든. 나를 헐뜯거나 그러지 않았어. "최불암은 무대로, 김민석은 국회로"였어. 사실 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유권자들이야 어땠겠어. 나중에 낙선사례 하러 돌아다니니까 주민들이 그래. "당신을 좋아하지만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표를 안 줬다"고. 여튼 지금은 그때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게 다행인 것 같아. '정치'의 차원에서도 말야.

난 정말 큰 정치는 TV에서, 온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 국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 이게 정치 아니면 뭐겠어? 그때 계속 국회에 남아서 배우로서 잊혀졌다면 그런 정치가 불가능했겠지. 정치인 최영한이 국회에서 보낸 4년은, 어떤 의미에서 배우 최불암이 진짜 정치를 하기 위한 수련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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