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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여전히 비겁한 기성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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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여전히 비겁한 기성 정치

입력
2011.10.3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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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10∙26 보궐선거에서 이긴 직후 그 의미에 대해 "시민은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다. 상식과 원칙이 이겼다"고 정리했다. 한마디로 변화를 바라는 시민사회세력에 기성 정치세력이 패했다는 얘기다.

박 시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재보선 결과를 들여다보면 여야를 대표하는 거대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모두 패자다. 한나라당은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이겼다고 하지만 '안방'인 서울시장을 내줬다. 당내에서 "역대로 서울시장을 내주면 정권도 내줬다"는 말이 나올 만큼 뼈아픈 결과다.

민주당은 독자적인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해 한계를 보였다. 또 서울시장 보선 투표 당일 실시된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은 22.7%로 한나라당(36.9%)에 뒤졌다. 박 시장의 승리가 민주당 덕분이라고 강하게 주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민주당은 11개 기초단체장 선거 중 2곳만 간신히 건지는 수모를 당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패배를 했으면 응당 그에 책임을 지는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당 어디에서도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지도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오히려 퇴행적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패배 직후 청와대에선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물러났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사퇴했다. 지난 4∙27 재보선 패배 후에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책임을 졌다.

이번엔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백용호 정책실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여권 패배의 결정적 원인은 2040세대의 이반이다. 주로 이들을 겨냥한 친서민 정책, 공정사회, 공생발전 등 그 동안의 국정 기조와 핵심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주도해 온 두 사람이 책임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선(先) 민심 수습 후(後) 인적 쇄신'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민심 이반을 낳은 사람들에게 민심을 수습하라고 하는 것은 불을 낸 사람에게 화재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세우라는 말과 같다. "선거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이 과연 서울시민과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들릴까.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선거가 끝난 뒤 "이번 선거는 무승부"라고 주장했다가 당내 인사로부터 '셧 더 마우스(입 닥쳐)'라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나오는 홍 대표는 그렇다 치고 한나라당내에서는 지도부 책임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28일 의원총회에서는 "선거 결과에 책임을 느낀다"고 말한 지도부나 의원들이 거의 없었다. 대신 당선된 기초 단체장들에게 꽃다발을 안겨 줬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환골탈태를 외쳐도 국민들이 곧이 듣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시민들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선거 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여권의 인적 쇄신이 없는 이유를 짐작할 뿐이다.

민주당의 태도도 여권과 같다.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참패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만 했을 뿐 책임지는 행동이 없다. 오히려 '야권통합 주도권'이라는 서울시장 선거 승리의 전리품을 시민사회나 다른 야권 세력에 빼앗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국민이 정치를 보는 시각은 복잡한 정치공학이 아니다. 선거로 심판했으면 당사자는 책임지는 행동으로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게 민심 수습의 시작이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비겁한 정치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김동국 정치부 차장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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