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서울시장의 파격 행보와, 종전 관행에 충실한 시청 공무원 사이의 엇박자가 드러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예산을 아낄 수 있는 취임식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서울시 실무부서에선 이미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취임식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31일 "박 시장의 취임식에 상영할 동영상을 준비 중"이라며 "어느 정도 제작은 마쳤고 편집 수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 용역을 통해 만든 동영상의 제작비는 1,891만5,000원. 두 편으로 이뤄진 동영상은 총 8분 분량이다. 3분짜리 '열린 영상'은 박 시장의 과거 활동을 소개하는 내용이고, 5분짜리 '시민의 소리'는 시민들이 새 시장에게 바라는 것을 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박 시장과 함께 들어온 권오중 비서실장 내정자는 "비용이 적게 드는 취임식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온라인 취임식을 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취임식 동영상과 관련해서는 "그런 걸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온라인 취임식을 하더라도 생중계로 메시지를 발표하는 방식이 유력하지 홍보 영상을 상영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동영상은 시장 선거일 전인 24일 발주했다"며 "선거 후 제작을 하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미리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세훈 전 시장과 이명박 전 시장 취임식 때도 비슷한 내용의 동영상을 틀었다"며 그것이 관행이었음을 강조했다. 역대 민선 시장 중 오세훈, 이명박, 고건 전 시장은 모두 세종문화회관에서 취임식을 했으며, 조순 전 시장은 남산에서 취임식을 치렀다.
박 시장의 파격행보와 종전 관행 사이의 간극은 출근 첫날부터 드러났다. 박 시장은 시청으로 첫 출근을 하며 관용차로 제공되는 3,500㏄ 에쿠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했다. 출근 후에도 에쿠스 대신 후보 시절 타던 카니발을 찾았다. 이 때문에 시청 공무원들은 업무용으로 사용하던 11인승 2,199㏄ 카니발을 시장 관용차로 급히 준비해야 했다.
주요 현안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 변화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박 시장은 31일 서울종합방재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면산 사태는) 물론 천재의 측면이 있다. 그러나 내가 근처에 살아서 몇 차례 가봤는데 지난해 분명 사고가 크게 있었고 이후 충분히 복구될 수 있는 부분도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됐다"고 말했다. 천재뿐 아니라 인재 요인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어서 종전 서울시 조사결과 발표와 배치된다.
박 시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주민보상이 걸려 있는 산사태 원인 조사가 다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시 관계자는 "(박 시장이) 그 지역에 사는 입장에서 느낀 소회를 말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오늘 내일 중으로 원인과 진행상황을 보고할 것"이라며 "조사한 걸 뒤집고 새로 하기에는 행정이란 게 무게감이 있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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