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SK의 한국시리즈 5차전.
1-0으로 앞선 삼성의 9회초 2사 후 마지막 수비. 통산 다섯 번째 우승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한 개였지만 1점차 승부였기에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2만7,000명 관중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곧이어 SK 8번 타자 정상호의 빗맞은 타구는 3루수 박석민 앞으로 힘없이 흐르는 타구. 박석민의 송구가 정상호의 발보다 빨리 1루수 채태인의 미트에 꽂히는 순간 포수 진갑용의 품에 뛰어 올라 안긴 선수는 2011년 가을의 주인공, 오승환(29)이었다.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던 2006년 한국시리즈 6차전이 ‘기시감(旣視感)’처럼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삼성의 ‘수호신’오승환이 5차전 피 말리는 승부를 마무리하며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다. 1-0으로 살얼음 리드를 지키던 8회초 2사 1ㆍ2루 위기가 닥치자 대구 홈구장에서만 들을 수 있던 가 잠실구장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전광판엔 ‘끝판 대장’오승환이란 문구가 새겨졌다. 이름과 웅장한 음악만으로도 천하의 SK 타자들조차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순간. 오승환은 초구에 5번 안치용을 유격수 플라이로 처리한 뒤 9회 3명의 타자를 모두 범타로 요리하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시리즈 5경기 가운데 4경기에 등판한 오승환은 1, 2, 5차전에서 세이브를 따 내며 단일 시리즈 통산 최다 세이브 타이 기록을 수립했다. 1997년 해태 임창용과 1999년 한화 구대성, 2004년 현대 조용준에 이어 네 번째 타이 기록. 2차전에서 한국시리즈 최다 신기록(5세이브)을 갈아치웠던 통산 세이브 수는 6개로 늘렸다.
오승환으로 시작해서 오승환으로 끝난 삼성의 우승이었다. 오승환은 1차전에서 2-0으로 앞선 8회 2사 후 마무리로 나서 1과3분의1이닝 동안 2탈삼진 무실점으로 팀의 첫 승을 지켰다. 이어 2차전에서도 2-0으로 앞선 8회초 무사 1ㆍ2루에서 구원 등판해 2이닝 동안 1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였다. 1-2로 패한 3차전엔 등판하지 않았고, 8-4로 승리한 4차전에서도 1이닝을 던져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4차전에서 삼성이 9회초 1점을 보태지 않았더라면 오승환은 전인미답의 한국시리즈 4세이브를 거둘 수도 있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SK에 4전 전패로 무너졌던 삼성은 부활한 오승환을 앞세워 시리즈전적 4승1패를 거두며 1년전 치욕을 깨끗이 설욕했다. 삼성은 통산 5번째 우승(85년 전후기 통합 우승 포함)을 거두며 SK를 제치고 ‘2000년대 최강팀’으로 우뚝 섰다.
일등공신 오승환은 기자단 투표에서 총 66표 가운데 46표의 몰표를 받아 차우찬(18표)과 안지만(2표)을 여유 있게 제치고 MVP에 등극했다. 오승환이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건 데뷔 첫 해인 2005년에 이어 개인 통산 두 번째 MVP. 2005년 오승환은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에 등판해 1승1세이브(7이닝 무실점), 11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로 한국시리즈 첫 MVP에 올랐다. 한국시리즈 MVP 2회 수상은 LG 김용수(90년ㆍ94년)와 KIA 이종범(93년ㆍ97년), 현대 정민태(98년ㆍ2003년)에 이어 통산 네 번째다.
한편 이날 5차전에서 우승이 확정된 순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큰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류중일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이만수 SK 감독대행
전임 김성근 감독님이 좋은 선수들을 키워주셔서 내가 그 선수들을 데리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오게 됐다. 비록 준우승했지만 우리 선수들이 진정한 챔피언이다. 악조건에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진정한 챔피언이 아닌가 싶다. 지난 2달 동안 많이 힘들었다. 감독대행이 이렇게 힘들다는건 처음 알았다. 야구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지도자로 선수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인내했다. 이 자리를 빌어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쉬움보다는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 밖에 할말이 없다. 선수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왔다. 선수들이 칭찬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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