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라디오 주례 연설에서"어떻게 하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안정과 희망을 줄 수 있을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더욱 더 깊이 고뇌하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통감하고 있다고도 했다. 10ㆍ26 서울시장 보선에서 표출된 2040세대의 분노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왠지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은 20~30대 젊은 층의 높은 지지와 기대 속에 탄생했다. 2007년 12월 대선에 임박해 실시된 대학가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60%대 지지를 넘나들었다. 일반국민 대상 여론조사보다 10%포인트 가량이나 높은 수치였다. 으레 진보개혁 성향 후보 지지가 대세였던 당시까지의 대학가 분위기에 비춰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MB에 건 기대 배반 당한 2040
그러나 정권 출범 4년 차의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이명박 정권의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은 바로 그들이다. 열화와도 같았던 젊은 층의 지지와 기대는 이제 이 대통령에게는 아득한 추억일 뿐이다.
대선 캠페인 때 지나치게 띄운 기대심리가 문제였다. 20대와 30대에게 성공신화의 이 대통령은 취업난, 고용불안에서 금방 건져내 줄 구세주로 비쳤다. 그러나 양극화가 심화하는 구조 속에서 하루아침에 취업난과 생활고를 해결할 수 있는 정권이나 지도자는 없다. 게다가'고소영''강부자'조각파동과 종교 교리화한 부자감세 논란을 거치면서 젊은 층은 허망한 짧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했다. 배반 당한 기대는 곧 분노로 바뀌었다.
지난해 6ㆍ2지방선거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분노의 중간 결산이었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는 민주당 정동영 후보보다 서울의 20~40대로부터 20%포인트 안팎의 표를 더 얻었다. 6ㆍ2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투표 결과는 정반대였다. 0.6% 포인트 차의 신승을 거둔 오세훈 후보는 20~40대에서는 큰 표차(20대 22.7, 30대 36.4, 40대 14.4%포인트)로 뒤졌다. 이번 서울시장 보선에서는 표 차가 더욱 벌어졌다. 30대에서는 3배 이상 벌어졌다. 이들 세대의 분노가 그만큼 더 깊어졌다는 뜻이다.
문제는 2040세대의 분노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분노 원인의 해소책을 찾겠다고 하지만 구조적 요인을 하루아침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2040세대 분노의 홍수가 적어도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는 속절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니 그 후까지도 계속되지 말란 법이 없다. 정권이 바뀐다 해도 젊은 세대가 직면한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도깨비방망이 같은 수단이 있을 리 만무한 탓이다.
이쯤에서 우리사회의 세대별, 계층별 분노의 본질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대한 책임을 정권으로 돌리며 분노를 표출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자신의 어려운 상황은 대개 '정권 탓+ 자기 탓+ 어떤 정권도 어쩔 수 없는 구조 탓'의 3중 원인에서 초래된다.
이런 구조를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어려운 처지를 정권 탓으로 돌리면 어떤 정권도 견뎌 낼 수 없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참여정부 후반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엄청난 분노를 쏟아냈다. 이명박 후보의 500만 표차 압승은 그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그런 분노가 작용한 결과였다.
분노의 부메랑 모두가 직시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은 정치ㆍ사회적 분노의 조직화를 더욱 용이하게 만든다. 이번 서울시장 보선에서 직접 확인했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책임을 포함해서 불가피하게 감내할 수밖에 없는 사안의 책임까지 집권세력에 모두 지우는 것이 꼭 바람직한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맹목에 가까운 분노의 투사 비용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분노의 수혜자가 곧 분노의 희생자가 된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 2040과 5060을 떠나 우리 사회의 분노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이계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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