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로 일제에 의해 교수형을 당한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로마교황청에 의해 복자(福者), 나아가 성인(聖人) 반열에 오르게 될까.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31일 “지난해 6월 구성된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준비위원회가 기초 자료를 조사하고 검토해 안 의사를 비롯한 551명을 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 그 명단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시복 추진 대상자 551명은 안 의사 등 ‘근ㆍ현대 신앙의 증인’ 24명과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 527명이다.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가 시복 대상자 명단을 확정해 교황청에 제출하면 교황청이 시복 여부를 결정한 뒤 교황이 이를 최종 재가한다.
시복시성(諡福諡聖)은 가톨릭 교회가 복자나 성인을 공식 선포함으로써 신자들이 공적으로 공경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회가 복자로 선언하는 ‘시복’은 성인으로 선언하는 ‘시성’의 전 단계다. 전 세계 교회가 공경하는 ‘성인’과 달리 ‘복자’는 해당 지역 교회나 단체에서만 공경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천주교인과 사제, 한국에서 활동한 외국 선교사 중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는 김대건(1821~1846) 신부 등 순교자 103위(位)다.
안 의사는 1895년 세례를 받고 황해도 해주와 옹진 일대에서 전교 활동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러나 조선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행위가 천주교가 금하는 ‘살인행위’라는 이유로 가톨릭 신자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1993년 복권됐다.
평신도 신학자인 황종렬 박사(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장)는 지난달 28일 서울대교구가 마련한 ‘시복시성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안 의사가 이토를 사살한 것은 이기적이거나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에 수용 가능한 살인이었다”고 시복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황 박사는 “전쟁에서 살인을 저지른 잔 다르크가 성인의 반열에 오른 점을 볼 때 안 의사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번 시복 추진 대상자 명단에는 베이징 주교에게 ‘천주교를 박해하는 조선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서양의 군대를 파견해달라’는 내용의 백서(帛書)를 보내려다 발각돼 처형당한 황사영(1775~1801)도 포함됐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이장우 연구실장은 “안 의사와 달리 황사영은 민족적 입장에서 볼 때 복자가 되기에는 논란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현재 전 세계에서 로마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된 시복 청원은 2,000여건”이라며 “이번 안 의사를 비롯한 대상자들이 교황청에서 심사를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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