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를 받아온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지난해 4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검찰조사에서 "한 전 총리 재직 시 9억 원을 주었다"고 한 진술을 토대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1년 6개월여 만에, 또 기소한 지 1년 3개월 동안 무려 23차례의 긴 법정공방 끝에 내려진 법원의 판단이다. 물론 최종심이 아닌 만큼 정치권에서 성급하게 "정의의 승리, 정치검찰 유죄"로 단정지을 건 아니다. 검찰이 즉각 항소방침을 밝힌 터라 앞으로도 신중하게 추이를 지켜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1심 판결만으로도 중대한 시사점을 갖는다. 재판부는 무죄판결 이유로 "금품을 전달했다는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금품수수를 인정할 유일한 증거는 그의 검찰진술뿐인데 그마저도 객관성과 합리성, 일관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술과 정황증거만 있을 뿐, 검찰의 공소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분명한 증거는 전혀 없다는 얘기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정치자금법 수사 자체가 엄청난 정치적 의미를 지니며, 또 유죄를 인정받지 못할 경우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는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뻔히 아는 검찰이 재판부를 납득시킬 만한 증거도 없이 무리하게 기소를 감행했다는 것부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이 사건을 다뤘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정치적 의미를 띤 사건에서 검찰이 이런 식으로 유죄 입증에 실패한 경우는 한 둘이 아니다. 한 전 총리 관련만 해도 앞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의 금품수수 사건 역시 증거 부족으로 일찌감치 무죄판결이 났다.
검찰은 "객관적으로 무죄가 날 수 없다"고 반발하지만 판결의 의미는 검찰이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두었든지, 아니면 수사능력 자체에 근본적 문제가 있든지 둘 중 하나를 명확히 가리킨다. 실제로 검찰은 이번 사건에 조직의 명운을 걸다시피 하며 사력을 다했다. 어느 쪽이든 검찰은 신뢰를 입에 담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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