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드라기(64) 전 이탈리아 재무부 국장이 1일 장 클로드 트리셰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취임한다. 국제사회의 눈길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 해법을 실천할 ECB의 새 수장에게 쏠리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드라기는 세계은행 이사, 이탈리아 재무부 국장, 골드만삭스 부회장,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등 공공 및 민간 부문의 경험을 두루 갖추었다. 자국 재무부 국장으로 있던 1991~2001년에는 민영화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현재의 그리스와 비슷한 위기에 처했던 이탈리아를 구함으로써 '슈퍼 마리오'라는 별칭을 얻었다.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드라기가 꺼낼 금리 정책과 국채 매입 여부다. 금리를 동결, 인플레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한편 역내 재정불량국가의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입해온 트리셰 전임 총재의 노선을 드라기가 얼마만큼 이어갈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시장은, 취임 이틀 후 열리는 금융통화정책회의에서 드라기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트리셰 총재가 9월 정책회의에서 1.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기 때문에, 성장 둔화에 따른 금리 인하의 필요성은 한층 절박해진 상태다. 드라기 역시 매파(강경주의자)로 분류되지만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린 트리셰보다는 온건하기 때문에 그가 금리를 낮춰 경기 부양에 주력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드라기가 자신을 지지해준 독일이 저금리 정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금리를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르면 12월 금리 인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드라기가) 이번 주 금리를 내린다면 독일에 자신의 매파 성향을 증명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독일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재정불량국가 국채 매입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위기국가의 정부가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ECB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ECB는 시장 안정을 위해 국채 매입을 중단할 수 없는 처지다. 드라기는 10월 26일 로마에서 열린 행사에서 "ECB는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비관행적 수단(국채 매입 포함)을 동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탈리아 출신인 것도 위기국가 국채 매입을 지속하려는 이유 중 하나다.
재정위기 합의의 실천 등 드라기가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측근들은 그가 특유의 침착함으로 잘 대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루크레치아 전 ECB 조사팀 팀장은 "트리셰가 열정적이었다면 드라기는 냉철하다"고 평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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