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31일 조선대 기광서 교수 해킹사건을 하위직 기무요원 4명의 단순 모의로 결론지었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엄중한 불법행위가 지휘계통과 상관없이 요원 간 부탁으로 쉽게 자행됐다는 수사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운 데다, 기무사에 대한 조사가 극히 제한적으로만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상관 지시 없이 이뤄진 해킹
국방부가 밝힌 사건의 발단은 광주 기무부대 한모(47) 원사다. 한 원사는 방첩업무를 담당하는 일선 수사관(활동요원)으로 2009년 4월 광주에 있는 군 교육기관인 상무대에서 강의하던 기 교수를 신원조사했다. 올해 8월 26일에는 같은 부대 소속 김모(37) 군무원에게 기 교수의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넘기며 아예 인터넷 정보를 빼내달라고 부탁했다.
한 원사와 김 군무원은 모두 동일한 직위의 수사관으로 지시를 내리고 받는 관계가 아니다. 철저히 업무를 분담해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기무요원들의 특성상 상관인 계장(준위), 과장(중령) 등의 개입 없이 한 원사의 부탁만으로 민간인 사찰이 시작됐다고는 믿기 어렵다.
이에 대해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문서상으로는 지시에 대한 증거가 없다. 하지만 구두 지시는 우리도 알 수 없다"고 말해 수사 자체가 한계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부대 다른데도 부탁만으로 가담
서울 송파부대 사이버 전문요원 한모(35) 군무원이 가담한 과정도 상식에 어긋난다. 한 군무원은 김 군무원이 "기 교수 이메일에 접속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한 8월 29일 당일 송파 지역 커피전문점에서 5회, 9월 1일에는 부대와 커피전문점에서 5회 해킹을 시도했다.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동기생의 부탁만으로 발벗고 나선 것이다. 조사본부는 "김 군무원과 한 군무원이 형, 동생으로 부르는 친한 사이고, 동기모임 회장과 총무를 맡아 각별한 관계"라고 설명했다.
관련자들이 배후를 숨기고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무사 내에서 민간인 사찰을 그만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군 관계자는 "부대가 다르고, 계통이 달라도 부탁만으로 쉽게 해킹에 가담한다는 건 그만큼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기무사 전면적 수사 안 돼
국방부는 사건 초기 "헌병대가 기무부대 안으로 들어가 조사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광주의 육군31사단 헌병대가 수사를 맡았고 국방부 조사본부가 전담한 것은 사건 발발 한달 여가 지난 이달 19일이었다. 범행의 주역인 송파부대 한 군무원이 자수한 다음 날이었다. 그 사이 관련자들은 노트북과 휴대폰 기록을 삭제했다.
기무부대 내부자료에 대한 접근도 제한적이었다. 기무사가 내놓은 결재문서와 컴퓨터 기록만 살펴봤을 뿐 송파와 광주부대의 지휘계통에 있는 관련자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경쟁관계인 기무부대에 비해 계급이나 인력, 영향력이 밀리는 헌병대에 철저한 수사를 주문한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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