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너·CEO 고민 담겨야 진정한 사회공헌
미국의 간판기업 제네럴 일렉트릭(GE)의 이사회 산하에는 낯선 이름의 조직이 하나 있다. 공공책임위원회. GE가 미국 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벌이고 있는 각종 사회공헌활동의 기본 방향과 세부 실행전략을 정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곳이다. GE측은 이 위원회 설립배경에 대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사회공헌활동을 중요한 경영사항의 하나로 간주하고 직접 챙긴다는 뜻"이라고 했다.
사회공헌은 이제 단순한 자선활동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아니다. 기업경영을 구성하는 요소는 투자나 채용, 인사관리, 마케팅 등에만 국한될 수 없으며 이젠 사회공헌도 그 자체가 경영의 핵심항목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글로벌 기업들의 추세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국내 기업들은 나눔 경영을 일회성 캠페인이나 불우이웃돕기성금 또는 수재의연금 내는 것, 연말 직원들이 고아원과 양로원 찾아가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 전문가들은 하루 빨리 이런 시각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진정성. 김병도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껏 기업의 사회공헌이나 나눔 활동 대부분은 나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기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고 이로 인해 선의의 나눔 경영조차 의미가 반감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최고경영층 차원의 인식전환이다. 경영진이 관심을 갖고 직접 챙기고 힘을 실어줘야 지속가능한 사회공헌활동이 가능하고, 그래야 국민과 소비자들에게 진정성이 전해진다는 것.
실례로 주요 글로벌 기업에선 사회공헌사업을 본사 부사장급 이상이 총괄 진행한다. 일본의 도요타와 파나소닉은 아예 CEO가 사회공헌최고책임자 지위를 겸하고 있을 정도.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경우, 본사 최고법무책임자(부사장)가 사회공헌활동을 총괄하고 있다. GE는 이사회 산하 공공책임위원회 외에, 사회공헌을 총괄하는 '기업시민 부사장'이란 자리가 있어 법무담당 부사장과 함께 세계 전역에서 진행되는 나눔경영을 주도하고 예산집행을 승인한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에 제대로 나서려면 무엇보다 오너나 CEO들의 고민이 깔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성과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회사구성원과 소비자, 투자자들에게도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박태진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도 "(진정성은) 돈의 액수나 인원의 문제는 아니다.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느냐의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최근 전개되고 있는 반(反)자본가 정서를 감안해서라도 사회공헌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위기의 책임을 금융기관을 포함해 기업에 묻는 여론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왔으며, 최근엔 월스트리트 시위 등을 통해 잠재적 폭발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 이 같은 반자본·반기업정서는 결국 기업경영에 중대 위협요소가 될 수 있는 만큼, 기업들은 단순히 여론무마 차원이 아닌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관점에서 나눔경영을 실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 가난한 예술가 후원, 1000원 콘서트…
한 공중파 TV프로그램인 '스타킹'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진 야식배달부 김승일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다음달 5일 서울'올림푸스홀'에서 열리는 독창회 준비 때문이다. 올림푸스홀은 디지털카메라 기업으로 알려진 올림푸스가 지난해 설립한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 신진 예술가들의 음악 활동을 후원하기 위해 무료 또는 저렴하게 대관해 준다. 김 씨는 가정 형편 탓에 접어야 했던 성악가의 꿈을 이제 당당히 펼치게 된다.
기업의 문화 나눔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는 게 최근의 추세. 삼성문화재단은 '맴피스트(MAMPIST)'제도를 운영 중이다. 맴피스트는 음악(Music) 미술(Art) 영화(Movie) 연극(Play)의 영문 첫 자와 사람을 뜻하는 '-IST'를 조합해 만든 말인데, 재능 있는 젊은 문화예술인을 선발해 2년 과정의 해외 교육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LG는 'LG 사랑의 음악학교'로 유명하다. 2009년부터 매년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4개 부문에서 음악영재를 선발해 실내악 전문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LG연암문화재단도 2008년부터 예술가들과 함께 보육원, 교화시설의 청소년을 찾아가 음악 연극 무용 등을 교육하는 'LG아트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SK도 2008년부터 'SK 해피뮤지컬스쿨'을 열고 있다. 그룹의 행복나눔재단과 함께 재능과 열정은 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매주 2~3회씩 전문가들이 춤 노래 연기 등을 가르친다.
KT는 일반 시민을 위한 콘서트 개최에 정성을 쏟고 있다. 매주 네 차례 열고 있는 광화문 '올레스퀘어 톡 콘서트'의 관람료는 단돈 1,000원. 연간 6만명의 관객이 찾을 정도로 반응이 좋은데, 수익금은 전액 난청 청소년의 재활을 돕는 수술 등에 쓰고 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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