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최근 울주군 골프장 불법대출사건으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부산저축은행그룹 경영진 4명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했다. 1심의 유죄 판결을 뒤집은 항소심을 대법원이 1심과 같은 판단으로 다시 뒤집은 것이다.
이 사건뿐이 아니라, 최근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 안기부 X파일을 공개한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 사건 등 주요 형사사건에서 대법원이 항소심 판단을 뒤집고 1심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30일 대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올해 7월부터 10월까지 주요 형사사건 판결문 38건을 분석한 결과,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파기한 것은 23건이었다. 이 가운데 '1심 판결이 맞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한 경우가 8건이나 됐다. 파기환송된 3건 중 1건 꼴로 항소심보다 1심의 판단을 옳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민사사건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에이즈 감염 혈우병 환자에 대한 제약사 배상 판결, 유방암 오진 피해자 승소 판결, 울산보도연맹 사건 손해배상 판결 등이 같은 경우다.
항소심은 1심보다 더 재판 경력이 많은 법관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소송 당사자들은 항소심이 1심보다 더 정확한 판결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고 항소를 한다. 물론 항소심도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항소심 판단이 틀리고 1심 판단이 맞는 경우가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이처럼 자주 일어나는 것은 상급심 재판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에서 결코 작지 않은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과거에는 항소심이 1심처럼 사실심(事實審)의 성격이 강했지만 최근엔 1심 기록과 보충 신문 등을 통한 법리적 판단에 주력하는 속심(續審)으로 바꿔 나가는 과도기여서 대법원이 사안의 실체에 직접 접근했던 1심 판단에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법조계 인사들은 "재판 당사자들에게 항소심 재판결과를 믿을 수 없게 만들어 상고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며 "모든 재판이 대법원까지 올라가야 종결되는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를 보여 주듯 이미 대법원 상고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11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상고심 본안 사건은 3만6,418건으로 10년 전에 비해 92%나 늘었다. 1심(19%), 2심(32%) 증가율과 비교할 때 매우 가파른 상승이다.
서울고등법원 관계자는 "항소와 상고 남발을 막기 위해 하급심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방침인 만큼 항소 사건을 줄이고 재판부를 보강해 항소심의 신뢰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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