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은 대표적 시민운동가 출신의 정치권 본격 등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부 정책 감시와 비판 역할을 맡은 시민단체는 입장이 곤란해졌다. 칭찬 한마디만 잘 못해도 "역시 한 통속"이라며 역풍을 맞을 수 있고, 본연의 역할대로 비판의 날만 세울 경우 시민운동가 출신의 정치권 안착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딴죽만 건다는 정반대의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30일 "박원순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에서 우리의 정책이 과거보다 더 잘 받아들여질 거란 기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워낙 보는 눈이 많아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박 시장 당선 직후 시민단체들은 일단 박 시장과 명확한 선 긋기에 나섰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8일 성명에서 "박 시장은 이제 시민운동가가 아닌 정치가이므로 시민운동을 이용하거나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미영 경실련 정치입법팀장은 "시민단체는 서울시정 감시라는 원래 역할을 위해 필요한 부분에서만 협력하고 시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박 시장의 정치적 성공을 실무적으로 돕고 싶은 시민활동가들은 시민단체를 떠나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면 되고, 시민활동가로서 비판과 견제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제자리에 남아 조금의 의심도 사지 않도록 더욱 엄격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직접적으로 설립을 주도했던 단체들은 더욱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박 시장이 1994년 만든 참여연대는 박 시장 당선 직후 "(박 시장이) 약속한 공약 하나하나의 실천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겠다. 기존에 해온 정책 제안과 비판활동에 충실할 것"이라며 견제 역할을 강조했다.
역시 박 시장이 설립한 희망제작소 관계자는 "지역활성화, 소기업 육성 등 기존 업무는 계속해 나갈 계획이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으니 모든 면에서 조심조심 일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는 서울시정과 직접 관련되는 부분은 적지만 오해를 살 부분은 피하면서도 기존의 기부, 가게 운영 사업은 확실히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 비판과 감시의 선봉에 섰던 박 시장이 갑작스레 감시의 대상이 되면서 딜레마에 빠진 시민단체가 사소한 실수로 '같은 편'이라는 오해를 받으면 급격히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염형철 사무처장은 "박 시장 당선으로 시민단체는 박 시장이 성공모델이 돼야 한다는 것과 비판자로서 위상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두 가지 과제를 안게 돼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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