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오지우(31ㆍ여)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다니는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등교해 수업을 들은 뒤 보충 수업을 받으러 야학에 간다. 일과가 끝나는 시간은 밤 11시. 평범한 고교생의 일상과 비슷하지만 뇌병변1급 장애인인 오씨에게는 기적과 다름 없는 일이다.
그는 지난 3월까지 경기 지역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12년이나 살았다. 집안 환경이 나빠져 19세가 되던 해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게 된 오씨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배우고 싶다는 꿈을 품어왔다. 하지만 장애인 시설은 공부를 하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오씨는 "시설에선 공부를 도와줄 선생님도, 교재도 마땅치 않았다. 장애인들의 탈(脫)시설 자립생활 얘기를 듣고 학교 진학을 위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설을 벗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 오씨의 책상 앞에는 '2014년 대학 심리학과 입학'이라는 목표가 적혀 있다.
오씨의 자립은 총 20개 장애인인권단체가 지난해부터 내년 말까지 탈장애인시설 자립에 나선 장애인 17명에게 주거비 지원, 지역사회 정착에 필요한 서비스 연결 등을 제공한 '시설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주거복지 사업' 성과 중 하나다. 특히 최근 영화 '도가니'를 통해 장애인시설의 폐쇄적 운영 문제가 재조명되고, 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추진되면서 장애인들의 자립 지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26년간의 시설 생활을 청산한 뇌병변1급 장애인 조수양(43)씨 역시 "사범대에 가 특수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고, 그래서 시설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실에서 생활하며 공공기관 서류 떼기, 은행업무, 간단한 요리 조리법 등을 4, 5년 배우고 이번에 자립해 공부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설과 가족의 반대가 심해 꿈에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자립에 나선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적 준비가 미흡한 실정이다. 일반 고교 특수학급에 들어가기를 원했던 오씨도 처음엔 교육청과 학교로부터 "특수학교에나 가라"는 말을 들었지만, 단체들의 지원과 활동보조를 받는 조건으로 일반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조씨가 입주한 집 주인은 이사 당일 "중증장애인이라서 세를 못 놓겠다"며 계약을 취소하려 했다.
지원금도 턱 없이 부족하다. 오씨와 조씨에게 나오는 매달 60만~70만원의 장애1급 수급비는 생활비로도 충분하지 않다. 비장애인과 달리 활동보조 서비스와 장애인 콜택시 이용비, 대소변을 받기 위한 기저귀값 등이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의 김은애 활동가는 "이번 사업 참여자들도 사업 기간이 끝나 주거비 지원이 중단되는 내년 12월 이후에는 자립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도가니대책위 염형국 변호사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통해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 보장과 장애인인권센터 설치 등 관련 지원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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