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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골에서 추위에 떨며 살아도 생활비 절반이 난방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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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골에서 추위에 떨며 살아도 생활비 절반이 난방비로

입력
2011.10.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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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방촌 '에너지 빈곤층' 겨울 가계부 분석

"11월부터 3월까지는 쪽방촌 사람들에게 너무 힘든 기간이여. 날씨가 추워지면 일은 줄어드는데 전기요금, 연탄값은 늘어나니…."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 주민 강모(60)씨는 겨울이 코앞에 닥치면서 탄식만 늘었다. 그는 "한겨울에도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맹추위가 아니면 가능한 한 난방을 하지 않고 견딘다"고 말했다.

매달 기초생활수급비 40만원을 받아 방세 20만원을 내고 나머지로 생활한다는 그는 연탄값으로 매달 10만원 정도를 쓴다. 한 장에 600원인 연탄을 6장 넣으면 8시간 정도 온기가 지속되는 연탄 보일러를 쓰는데 한 달에 300~400장의 연탄이 들어간다.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100~200장의 연탄은 턱없이 부족해 연탄값으로 생활비의 절반 정도를 써야 하는 것이다. 영등포 쪽방촌 주민 540여 가구 중 연탄을 때는 가구는 400여가구나 된다.

전기장판 한 장으로 겨울을 난다는 같은 쪽방촌 최모(62ㆍ여)씨는 "겨울엔 생활비의 절반 가까이를 난방용 전기요금으로 낸다"고 말했다. 최씨의 월 소득은 기초생활수급비 20만원과 국민연금 18만원이 거의 전부다. 여기서 방세 20만원을 제하면 생활비는 18만원 정도인데 겨울에는 전기장판 때문에 전기요금만 6만~7만원이 나온다. 이 지역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고 최씨는 연탄 보일러를 살 형편이 안돼 2만원짜리 전기장판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는 "너무 추워서 어쩔 수 없는 날만 몇 시간 트는데도 그러니 정말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 초 진보신당 녹색위원회가 서울시 구로구, 관악구, 강북구, 용산구의 빈곤층 71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1년 서울지역 에너지빈곤층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겨울철 에너지 빈곤층 가구의 월 평균 난방비는 약 8만4,000원. 10만원 이상 지출하는 가구가 절반에 가까운 47%에 달했다. 특히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전기를 쓰는 가구 중에는 난방비 10만원 이상인 경우가 과반수였다. 쪽방상담센터 관계자는 "전체 생활비 중 난방비 비중이 20, 30%가 훌쩍 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그나마 기름, 전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도시가스가 들어가는 지역에서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건물 주인이 주민들에게 가스비를 따로 받지 않는 대신 직접 보일러를 조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민 대다수는 결국 전기장판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건물 주인 원모(68ㆍ여)씨는 "주민들이 불쌍하지만 방세를 올려 받을 수 없으니 손해를 덜 보려면 난방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 가구 중 보일러가 없거나 고장 난 경우가 전체의 10%를 넘고 건물 자체가 노후해 단열이 잘 안 되다 보니 전기장판을 써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난방비에 비해 에너지 효율은 낮다. 원씨는 지난 겨울 9개의 쪽방이 있는 24평 건물에 오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18도에 맞춰 보일러를 틀었는데 가스비가 30만원 정도가 나왔다. 이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송모(30)씨의 25평 아파트에 온종일 겨울철 실내 쾌적 온도인 24도를 유지했을 때 나오는 월 가스비 12만~13만원의 두 배가 넘었다.

정부의 에너지 관련 복지정책은 이들에게 와 닿지 않았다. 돈의동 쪽방촌 사랑의 쉼터 이화순 관장은 "서울시와 종로구청의 지원은 안전점검 수준이다. 2009년에 전기장판을 배급하려다 서울시가 화재를 우려해 실행하지 못했고, 이외의 대책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 에너지 빈곤층 지원제도 문제없나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은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광열비 지원(수급비에 포함), 기초생활수급자ㆍ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전기요금 감면, 요금체납 빈곤계층에 대한 단전 및 단가스 유예조치, 기초생활수급자ㆍ차상위계층 등에 대한 연탄쿠폰 지급, 노후 보일러와 냉장고 교체 등이다.

대책은 많아 보이지만 대증적 처방이 대부분이다. 전기와 가스를 잡아먹는 낡은 주택의 단열재와 난방설비를 교체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고 체계적이지도 않다.

영등포 쪽방촌에 거주하는 차모(68)씨는 "5년 전 연탄 보일러를 갈았으나 여름에 비가오면 삭아버려 2,3년에 한번씩 갈아줘야 한다"며 "기초생활수급비와 국민연금으로 42만원을 받아 방값으로 절반 넘게(25만원)나가는데 어느 세월에 보일러를 바꾸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에너지재단이 2009년 시작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대상 보일러ㆍ창호 교체사업, 한국가스공사의 바닥난방 개선사업 등은 주택의 열효율을 높여주는 방식이지만, 각각 가구당 지원비가 너무 적거나(최대 100만원), 대상자가 너무 적어(200가구) 효과가 크지 않았다. 저효율 보일러를 고효율로 교환하고 단열재를 교체해주는 지식경제부의 '에너지효율개선사업'예산은 지난해 292억원이었지만 올해 194억원으로 줄었다.

에너지빈곤층 지원의 법적인 근거가 없고 부처간 손발이 맞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에너지빈곤층 지원대책 중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광열비 지급 외에는 법적 근거가 없어 임의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문제"라며 "에너지 관련 공기업이 고객관리나 사회적 공헌 차원에서 시혜차원에서 하는 것은 이벤트성 행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식경제부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해 10월 에너지빈곤층 지원법인'에너지복지법'을 발의했으나 복지전달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은 1년 넘게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근본적인 지원책인 주택 단열개량사업도 지경부, 국토해양부 등이 제각각 진행하고 있다.

에너지원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바꿔주는 환경적 대안이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예컨대 지경부의'에너지복지법'은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이용권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석유ㆍ석탄 같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환경적 관점이 결여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한다. 지난해 지경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관련 예산은 180억원에 불과, 저소득층에게 조명기기를 교체해주는 전력효율향샹사업 예산(191억원)보다 작았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에너지재단 "5개 쪽방촌에 맞춤형 지원"

기업의 에너지빈곤층 지원사업 중 대표적인 것은 연탄을 나르거나 조명을 교체해주는 행사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이 과연 수요자의 필요에 의한 사업인지는 의문시된다. 연말만 되면 기업들의 '연탄 나르기 행사'가 소개되지만, 월소득 100만원 이하 가구의 에너지원 중 연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4%도 되지 않는다. 전력회사가 고효율 조명기구로 교체해주거나 가스회사가 고효율 보일러로 교체해주는 행사도 '고객관리'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에너지재단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1사 1희망촌 사업'을 기획, 11월부터 시작한다. 빈곤층의 실질적인 에너지 지원 수요를 파악해 맞춤형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대한주택보증, 한국가스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5개 기업이 서울 영등포, 종로, 용산, 남대문, 동대문 등 5개 쪽방촌을 지원한다. 이들 5개 기업이 올해 총 1억원 정도의 물품을 지원할 예정이다.

종로 쪽방촌을 지원할 한국가스공사는 주민들에게 내복, 담요, 이불 등 난방물품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 지역에는 도시가스가 설치돼 있지만 집주인들이 사용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추워도 마음껏 사용할 수 없고, 전기제품을 사용하면 월세가 올라가기 때문에 주민들이 깨끗한 이불이나 내복 같은 물품을 바란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주택금융공사는 남대문 지역의 쪽방에 난방유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 곳 쪽방촌 33개동(棟) 중 5~6개동을 제외하고 기름보일러를 쓰기 때문이다.

재단은 내년부터는 이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한 기업이 매년 같은 지역을 지원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재단 관계자는 "과거 기업들의 빈곤층 에너지 지원은 자신들의 사업적 이해와 관련된 곳을 지목해 생색내기에 그쳤지만, 이제는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지원사업을 하도록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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