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근처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꼼마'는 음식 맛이나 식당 분위기보다 '글쓰는 요리사' 박찬일씨로 알려졌다. 잡지사 기자를 그만두고 이탈리아 유명 요리학교 ICIF에서 공부한 독특한 이력이 한몫 했다. 음식에서 머리칼이나 손톱이 나오지 않는 이상 주방을 절대 나오지 않는 과묵한 국내 요리사들과 달리, 그는 주방을 오픈해 요리 과정을 공개하고, 손님들과 대화를 나눈다. 요리에 대한 생각을 대놓고 만천하에 공개하는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글쓰기가 요리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먹는 걸로 나쁜 짓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칼럼에 '좋은 재료로 요리해야 한다'고 쓰고 제 음식에 조미료 넣을 수는 없잖아요. 글 쓰면서 요리에 대한 생각도 정리되고요. 글쓰기가 요리하는 데 자극이나 훈련이 되는 셈이죠."
몇 년 전부터 신문, 잡지에 종종 음식 칼럼을 쓰더니 산문집 등을 내며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펴낸 책은 (난다 발행). 이태리가 아니라 '잇태리'다. 자신에게 이탈리아는 특별한 나라 '잇(it)태리'이면서, 음식의 나라 '잇(eat)태리'이기 때문이란다. 이탈리아에서 음식과 와인 공부를 했던 3년 시간을 바탕으로 쓴 경쾌한 산문집이다.
저자는 '나는 이탈리아에서 학생이나 노동자로 살았으니 관광지에 대해서 알 턱이 없다'(13쪽)고 고백하며 여느 여행 가이드북과는 다른 이탈리아 여행법을 소개한다. 대체로 관광이 아니라 이탈리아 현지 음식을 제대로 즐기는 법에 관한 조언이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여행객들의 특징을 소개하며 이탈리아 관광지에서 바가지 쓰지 않는 법도 알려준다.
그는 "이 책은 세 명의 문인을 거쳤다"고 소개했다. "시 쓰는 최갑수가 사진을 찍고, 시 쓰는 김민정이 편집을 했으며 소설 쓰는 김중혁이 추천사를 써줬다"는 것. 최갑수 시인은 박씨가 를 냈을 때 사진을 찍어줬고, 김민정 시인은 중앙대 문예창작과 후배다. 김중혁 작가는 박씨가 레스토랑 잡지 편집장을 했던 때 맛집 담당 기자였단다.
그는 국내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과 인연이 깊다.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는 종종 소설, 시집 출간 기념회와 이런 저런 문학행사들이 열린다. 작가들이 종종 작품을 쓰며 요리 자문을 얻으러 오기도 한다. 박씨가 도움을 준 작품이 백영옥의 장편소설 '스타일'과 드라마 '파스타'다.
그는 드라마 '파스타' 때문에 뜬 올리브 스파게티 '알리오 올리오'를 간장에 비빈 쌀밥에 비유하며 '솔직히 요리라고 부르기도 뭣한 파스타'라고 말한다. '이런 게 고급 레스토랑을 표방한 곳에서 팔리는 것은 약간 코미디'라고 비꼬며 '이문이 왕창 남는 꽤 짭짤한 메뉴이기 때문에' 이 진실을 제대로 말하는 요리사가 별로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는 유쾌하면서도 뾰족한 부분이 있다.
박씨는 '나는 이선균처럼 거드름만 피우는 주방장이 아니어서 심지어 일도 한다'(155쪽)고 우기지만 까칠한 성격은 글뿐 아니라 요리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업계 이목을 끈 것도 이런 성격에서 비롯됐는데 예컨대 이탈리아식 조리법을 지키면서도 최대한 국내산 재료를 쓴다. 한때 강남 유명 레스토랑 사이에서 '제주산 흑돼지 스테이크와 강원도 감자 샐러드'처럼 국내산 재료를 내세워 메뉴 이름을 길게 적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2000년대 중후반 그가 청담동, 신사동 일대 이탈리아 레스토랑 컨설팅을 해주며 선보인 방식이다. 그는 소비자들에게도 "비행기 타고 온 유기농 재료보다 농약뿌린 국내산 재료가 더 몸에 좋다"고 권한다.
"해외 유명 요리사들도 한국에 오면 된장, 김치 넣은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잖아요. 이건 퓨전이 아니라 요리의 본령에 충실한 거죠."
'요리 본령에 충실하게' 개발한 메뉴가 대박을 낸 덕분에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요리감각도 갖췄다는 평을 듣게 됐다. 그가 2007년 처음 선보인 굴 파스타는 지금까지 사랑받는 메뉴다.
"이탈리아에서는 굴이 귀하기 때문에 파스타에 넣는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죠. 굴 파스타는 한국이라 가능한 요리인데, 고추, 미나리를 접목시켜서 한국인 입맛에 맞췄죠."
그는 "글이든 요리든 아는 만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필경사들이 글씨체만 보고 사람 마음을 꿰뚫듯, 미식가들은 음식 맛만 보고도 요리사의 내공과 자세를 안단다. "요리든 글이든 '요만큼' 알면서 '이~만큼' 아는 것처럼 만들면 딱 티가 나요. 유치하죠. 이제 다른 사람이 어떤 포장을 하는지도 알겠고, 저 스스로도 거짓말은 못하겠어요."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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