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이기는 지도자는 하나 같이 정치를 바꾸겠다는 공약으로 민심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대개는 권력을 잡은 뒤 그 약속의 실행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쯤 거의 모든 지도자들의 지지율이 급락한다.
톰 피터스는 1982년 <초우량 기업의 조건> 이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라는 간판을 얻게 됐다. 그는 컨설팅 회사 매킨지의 동료들과 함께 이 책에서 43개의 초우량 기업을 선정해 소개했다. 하지만 2년 뒤 미 시사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이 기업들의 3분의 1가량인 14개 기업이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제목은 '이런! 지금은 누가 초우량 기업이지?'였다. 초우량>
대통령, 총리가 거의 예외 없이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는 것을 유권자들의 잘못된 선택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고 건재할 듯 보였던 기업들이 불과 1, 2년 사이에 존망의 기로에 서는 것은 왜 일까.
경제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 <경제학 콘서트> 의 저자로 잘 알려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팀 하포드는 신작 <어댑트> 에서 이를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의 복잡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댑트> 경제학>
저자가 책 머리에 거론한 토스터의 경우를 보자. 두툼한 책 한 권 값이면 살 수 있는 토스터는 아무리 싸구려라도 400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 부품들을 모두 자기 손으로 만들어 토스터를 완성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이 있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한 도전이었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토스터 프로젝트는 지금 세상이 복잡해져 있고 그런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상징한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전문가 집단이 해결책을 찾아 줄 거라고 다들 믿지만 이 또한 잘못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1980년대 미국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은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강경책을 쓸 경우 소련이 어떻게 반응할지 전문가들을 찾아 의견을 묻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완전히 상충한다는 결과에 충격을 받아, 전문가 집단이 얼마나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는지를 본격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또한 충격적이다. 전문가 집단이 내놓은 계량화 가능한 구체적인 예측 중에 현실이 된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학부생보다 나은 예측을 내놓는 정도이고, TV에 자주 출연하는 사람일수록 무능한 경우가 많았다. 결론은 전문가 역시 현실의 복잡성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만큼 해답을 찾아야 할 현실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 문제에 대한 답을 아무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하포드가 그 어떤 뛰어난 전문가보다, 탁월한 지도자보다 더 효과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라고 보는 것은 자연계의 적자생존 같은 '진화의 프로세스'다. 끊임 없이 '선택'하고, 그 선택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면 바로 '변이'하는 시행착오의 과정이야말로 막강한 현실 문제의 해결 방식이라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주목할 것은 그가 이 같은 시행착오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피해야 할 것들과 활용해 볼 만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야 할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중앙화'이다. 한정된 정보로 더구나 중앙에서 요약하고 분석한 그림은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충성도 높고 단합된 팀은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질 위험도 크다. 저자에 따르면 이라크전 당시 이라크 시민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한 미군의 처지를 일변시킨 것은 조직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이라크 역사를 배우고 이라크인을 존중하라고 지시한 한 연대장이었다.
강하게 결합된 체제는 충격에 강할 수 있지만 그 충격이 임계치를 넘어설 경우 한꺼번에 무너지고 만다. 세계 금융위기의 전주곡이 된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AIG 사태,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같은 게 그런 사례다. 그래서 강한 결합을 연관관계가 느슨하고 좀더 유연한 시스템으로 전환하라는 것도 그의 주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문제 해결에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실험해보고,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자세다. 특히 기업은 '실패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하는 저자는 실험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실험을 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임을 확신할 수 있는 개인의 용기가 진보와 발전을 가져온다고 강조한다. 송도 신도시를 비롯한 한국 이야기를 포함해 성공과 실패, 도전과 실험에 관한 숱한 사례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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