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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사람/ 100세 세계최고령 마라토너 파우자 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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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사람/ 100세 세계최고령 마라토너 파우자 싱

입력
2011.10.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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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5:16. 전광판이 그의 도착을 알렸다. 16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가 끝날 무렵 노란 터번을 두른 남성이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케냐 출신의 케네스 문가라 선수가 1등으로 결승 테이프를 끊은 지 6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결승선을 넘은 그의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고드름처럼 자란 수염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노란 티셔츠를 입은 그의 가슴팍에 ‘100’이라는 번호표가 달랑거렸다.

대회 우승자보다 더 주목을 받은 파우자 싱은 이날 세계 최고령 마라톤 완주자가 됐다. 올해 나이 100세. 마라톤 풀코스인 42.195㎞를 장장 8시간25분16초로 완주한 싱은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한 몸에 받았다. 그의 등 뒤로 그보다 어린 5명의 선수가 헐레벌떡 달려들어왔다.

싱은 인도 펀자브 지역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한평생 농사만 지었다. 자연을 벗삼아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내는 게 꿈인 평범한 가장이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성품은 타고난 듯 했다. 하지만 불행이 찾아왔다.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그의 나이 81세. 한평생 일궜던 땅을 버리고 유일한 피붙이인 아들이 있는 영국으로 향했다. 외로웠다.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했고,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외로움을 달래려 운동화를 질끈 동여맸다. 나이 아흔에 가까웠다. 매일 뛰었다. 행복했다. 100m만 달려도 숨이 가빴던 그는 매일 10~15㎞까지 뛰고 걸을 수 있게 됐다. 마라톤 선수였던 하르만데르 싱도 그를 도왔다. 코치이자 통역가를 자처한 하르만데르는 “싱과 함께 훈련한 것은 나의 영광”이라며 “그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오히려 나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그가 남긴 족적들은 놀랍다. 2000년 런던 마라톤 완주를 시작으로 3년 뒤 92세의 나이로 토론토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전세계 최고령 마라톤 완주자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총 8번의 마라톤에 나갔다. 또 최근 100세 이상 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육상경기에 참가해 100m부터 5,000m 달리기까지 8개 종목에서 모두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178㎝, 52㎏의 비쩍 마른 체구인 그가 달릴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는 지난 10년간 TV 케이블 선에 걸려 넘어져 부상을 입은 것 외에 다친 적조차 없다. 지난해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혈액 나이 40세, 다리뼈 나이 좌, 우 각각 35, 25세라는 판정을 받았다. 영국 가디언과 캐나다 글로브앤메일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싱은 “나는 필요한 최소한만 먹는다”라며 “과식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늘 즐겁게 생활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밝혔다. 채식주의자인 싱은 생강을 잔뜩 넣은 카레와 홍차, 인도 전통 빵인 ‘로티’를 즐겨먹는다. 우유는 마시지 않는다. 술, 담배는 애초에 건드리지조차 않았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건강을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이다. 싱은 “너무 행복해서 죽었다는 사람을 들어본 적 있어요”라고 반문하며 “부정적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웃으면서 즐겁게 살면 만사가 다 잘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유명인사다. 2004년 세계적인 축구선수인 데이비드 베컴과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에 이어 스포츠 상업광고에 출연해 ‘불가능이란 없다’를 외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출연료는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4월 그의 100세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에서 맺은 친구만 전세계적으로 2만여명. 팬들은 그를 ‘터번을 두른 토네이도’라고 부른다.

싱의 마지막 꿈은 내년 영국 런던 올림픽의 성화 릴레이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는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서 성화봉송을 했다. 그는 “그 전에 내년 5월 영국 에든버러 마라톤부터 완주할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싱은 안타깝게도 기네스북 ‘100세 이상 최초 마라톤 완주자’로 등재되는데는 실패했다. 출생기록을 입증할 서류가 없어서다. 결혼증명서나 운전면허증 등이 없는 싱은 영국 여권만이 유일한 신분증인데, 여기에는 1911년이라는 출생연도만 기입돼 있다. 이 때문에 기네스북 사무국은 인도 정부에 문의했지만, 인도 정부 역시 출생증명 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고 회신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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