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상의 하자는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누가 봐도 낙하산 인사이긴 하죠…."
전력계통 정보통신(IT) 전문업체인 한전KDN의 한 고위간부가 한 얘기다. 이틀 전 주주총회에서 김병일 동덕여대 교수가 새 사장으로 선임된 뒤 불거진 '낙하산' 논란에 대해 묻던 참이었다. 그는 주총 시간과 장소를 전혀 공개하지 않은 채 비밀리에 사장 선임이 이뤄졌다는 데 대해선 "100% 주주인 한전이 승인한 시간과 장소를 외부에 알려야 할 의무는 없다"고 항변하면서도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만큼은 인정했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IT분야 자문단으로 활동했던 김 교수를 둘러싼 낙하산 논란은 이미 지난 6일 국정감사에서 불거졌었다. 야당 의원들은 물론 여당 의원조차 정부에 재고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형식상으론 한전)는 김 교수의 한전KDN 사장인선을 강행했다. 그는 31일 취임식을 갖는다고 한다.
사상 초유의 정전대란이 발생한 원인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전력산업의 핵심 컨트롤타워가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는 사실에 온 국민은 분노했다. 실제로 한전을 포함해 전기관련 공기업 13곳의 감사 전원이 낙하산이다. 2명은 이 대통령의 동지상고 선후배이고, 11명은 대선캠프나 인수위, 한나라당 출신이다. 김중겸 한전 사장, 안승규 한전기술사장 등은 고려대 인맥에다 현대맨이다. 일부 발전 자회사 사장들을 두고는 '영남대 전성시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대통령은 정전대란 직후 한전을 찾아가 관계자들에게 호통을 쳤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취임 8개월만에 물러났다. 이는 정부가 그만큼 정전사태를 심각하게 봤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래 놓고 이번에 또 낙하산 인사를 내려꽂았다. 예의 청와대 기획설도 무성하다. 낙하산으로 도배가 된, 그래서 권력 핵심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전력 공기업들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이미 맘 속으로는 점찍어 뒀더라도, 능력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최소한 이번만큼은 낙하산 논란을 비켜가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임기 내내 쏟아지고 있는 인사문제에 대한 비판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양정대 산업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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