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1,300억원의 건강보험재정을 날려버린 판결에 법원의 고질적인 전관예우 관행이 영향을 준 것일까.
지난 21일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영상장비 의료수가(건강보험 진료비) 인하결정 취소판결을 이끌어낸 대한병원협회 측 변호사가 몇 달 전까지 같은 법원의 부장판사로 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에서 직접 병원 측을 변론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종필 변호사(사법시험 28회)는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 부장판사로 있다가 올해 2월 태평양으로 옮겼다. 이번 사건 재판장인 행정6부 김홍도 부장판사(사시 29회)와는 올 초까지 2년간 행정법원 동료였다. 더구나 판사가 쟁점도 아니었던 절차하자를 직권으로 쟁점화한 끝에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어서 전관예우 차원의 판결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법원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5월 수가를 인하할 때 전문평가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은 것을 인하취소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애초 쟁점은 수가 인하산정의 근거가 되는 병원별 MRI 촬영 건수 등이 제대로 계산됐는지 여부였다. 2차 재판에서 병원 측은 "평가위 미개최를 독립된 절차하자 사유로 주장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선고를 미루고 직권으로 평가위 개최 여부를 쟁점으로 할테니 양측에 변론을 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재판부는 '전문평가위원회 평가를 거쳐 (수가를) 결정 또는 조정할 수 있다'는 고시(내부준칙)를 근거로 무효 판결을 내렸다.
복지부는 ▦(고시보다) 상위규칙인 복지부령 13조에 '심의위원회(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ㆍ건정심) 심의를 거쳐 수가를 조정하고 고시할 수 있다'고만 돼 있으며 ▦고시에 언급된 평가위 개최는 '신의료기술 등의 결정 및 조정기준'에서 파생된 규정으로 신의료 기술에만 적용해 왔을 뿐이어서 수가 조정은 건정심만 거치면 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복지부 측 남기정 변호사는 "법원은 복지부령의 다른 조항에 '세부사항은 고시에 위임한다'는 문구가 있기 때문에 이 조항도 영향을 받아 수가를 조정할 때 고시에 따라 평가위를 개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법원 측은 "절차상 하자에 따라 정당한 판결을 내린 것이지, 전관예우는 말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전관예우의 영향이 있었는지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번 판결이 지금까지 다른 판사들과 복지부가 찾지 못한 허점을 찾아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1심 법원이 수가인하 집행정지까지 받아들임으로써 2심에서 복지부가 이기더라도 병원들은 그 사이 적게는 수백억원의 이익이 생기고, 변호사는 막대한 성공보수금을 챙기게 된 것은 사실이다. 반면 건강보험 재정은 연간 1,291억원, 환자 부담 387억원이 더 나가게 됐다. 복지부는 우선 집행정지 결정에 대해 28일 항고키로 했고, 1심 판결문이 송달되는 대로 본안 소송도 항소하기로 했다. 건정심에 참여하는 건보가입자단체들은 "똑같은 절차상 하자를 문제삼아 수가인상을 취소하는 소송을 내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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