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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 연구의 대가 獨 알프 뤼트케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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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 연구의 대가 獨 알프 뤼트케 교수 인터뷰

입력
2011.10.2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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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History of Everyday Life)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알프 뤼트케 독일 에르푸르트대학 명예교수에게 한국사회는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그는 "주변 역사학자들에게 서양 역사를 잘 알려면 동양, 특히 한국으로 가라고 추천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나라들이 서양의 제국주의 논리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그 논리를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뤼트케 교수는 2005년 임지현 한양대 교수와 '대중독재'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후 한국과학재단의 세계수준 연구중심대학(WCU)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양대 석좌교수로 초빙돼 2009년부터 매년 10주씩 한국을 찾고 있다. 학술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뤼트케 교수를 27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한국학계와 교류하며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대중독재'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하면서 독재가 폭력과 테러 없이 가능한지, 대중이 왜 독재체제에 협력했는지 관심을 두게 됐다. 독일의 나치 체제도 전적으로 누가 희생자였고, 가해자였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애매한 지점이 존재한다. 나는 일상사 연구를 하며 이런 점을 강조한 바 있는데, 한국 학자들이 제시한 '대중독재' 역시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한국의 최근 이슈 중 눈 여겨 본 것이 있다면.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건이다. 연평도 포격 당시 한국에 있었는데, 전쟁이 벌어질 듯한 급박한 분위기를 느꼈다. 일상사 연구는 대중의 반복된 일상에서의 미세한 변화가 사회 구조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자동차경주대회 'F1'유치도 눈에 띄었다. G20 정상회담, 올림픽,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국제 행사를 유치함으로써 해외에 '세계적 수준의 무엇'을 이룩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이런 노력은 오히려 제1세계로부터 한국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드러낸다."

-'권력에 대한 대중의 저항과 협력'이란 차원에서 최근 리비아 사태는 어떻게 보나.

"독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복합적으로 일어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수용소를 경험한 작가 프리모 레비는 그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흑과 백처럼 명백하게 구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해자 일부는 가해자와 협력하거나 더 약한 피해자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권력에 협력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에서 흑도 백도 아닌 '회색지대'란 개념을 고안했다. 리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는 오랜 기간 독재를 겪었다. 리비아 국민 역시 독재에 일면 저항하면서도 일부분 협력, 동조하는 '회색지대'가 있었을 것이다. 튀니지, 이집트 항쟁의 성공으로 리비아에서도 저항이 본격화됐다고 본다. 중요한 건 이런 전환이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견고해 보이는 사회 구조는 일상의 미세한 변화로 순식간에 뒤집어질 수 있다."

-여전히 서구 학계가 역사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서구에서 제3세계, 혹은 한국의 역사학계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한국어 논문을 볼 수 없어 구체적으로 한국의 역사학계에 대해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지난해 임지현 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국제역사학회 이사회 회원이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국제역사학회는 세계 역사학자들이 5년마다 한자리에 모이는 거의 유일한 학회인데, 이사회 회원이 됐다는 것은 그의 연구가 역사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았음을 뜻한다."

- 앞으로 계획은.

"독일과 한국을 비롯해 분단을 경험했거나 분단된 국가들을 연구할 생각이다. 일상의 균열에서 사회 구조가 바뀐다는 점에서 불안을 갖고 있는 사회에 관심이 많다. 한국이 그러하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 일상사 연구란…사진·일기 등 개인 일상 통해 역사를 파악하는 방법론

일상사 연구는 1970년대 후반 독일에서 태동한 역사학 연구방법론으로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한 개인이 살아온 삶의 방식에 주목한다. 1980, 90년대를 거치며 역사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다. 뤼트케 교수는 "프랑스 아날학파가 통계적 방법으로 역사의 전체적인 상을 그린다면, 일상사 연구는 사진, 일기 등 개인 일상의 재현을 통해 역사를 파악한다"라고 구분했다. "일상은 인간이 자기 삶을 어떻게 사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는 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개인의 일상을 통해 역사를 파악하는 방식이 일상사 연구입니다."

예컨대 뤼트케 교수는 28, 29일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WCU 트랜스내셔널' 학술제에서 1920, 30년대 독일 한 노동자의 일기, 사진, 급여내역을 통해 양차대전 기간 독일 노동시장을 분석한다. 이 시기는 독일이 왕정, 민주주의, 전체주의를 차례로 경험한 때다. 격변의 시기, 독일의 경제와 노동자 삶은 당연히 불안정했다. 한 노동자의 일기는 당시 불평등한 고용관계와 사회 변화 양상, 대중의 심리를 함축하고 있다. 그는 "이 노동자의 급여내역을 보면, 그가 근무한 공장이 명확한 기준 없이 임금을 책정했음을 알 수 있다"며 "한국처럼 노동문제가 심각한 사회에서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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