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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중국 사행을 다녀온 화가들'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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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중국 사행을 다녀온 화가들' 展

입력
2011.10.2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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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이 멀리 떨어진 궁벽한 곳이기에 지식을 넓힐 도리가 없다. 중국 학자를 만나서 나의 막힌 가슴을 터 놓기가 소원이었다. 어느덧 백발이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날개가 돋힐 수 있을까."

조선 후기 문인화가 강세황의 한탄이다. 그토록 바라던 기회는 나이 일흔이 넘어서야 찾아왔다. 외교 사절로 가는 사행(使行)에 부사(사절단 대표인 정사 아래 직위)로 발탁되어 1784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청나라를 다녀온 것이다. 직업화가는 아니었지만 그림으로 당대 으뜸이었던 그는 시화첩, '사로삼기첩(槎路三奇帖)'과 '영대기관첩(瀛臺奇觀帖)'으로 사행을 기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7일 시작한 전시 '중국 사행을 다녀온 화가들'은 강세황을 비롯한 조선 후기 화가들의 사행 기록화와 관련 자료 33점을 모았다. 중국의 선진 문물을 선망하던 그 시절, 사행의 현장을 담은 그림과 문화 교류의 결실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사행은 공식 수행원 30여명을 포함해 300명 가량이 움직이는 대규모 출장으로, 도화서 화원들이 반드시 따라갔다. 화원이 아닌 문인화가들은 강세황처럼 사신 자격으로 가거나, 추사 김정희(1786~1856)처럼 자제군관(사신들의 개인 수행원)으로 다녀왔다.

사행은 문화충격이었다. 다녀온 지식인들은 책을 써서 이를 알렸다. 가 대표적이다. 연암 박지원은 이 책에서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얕볼 게 아니라 그들의 앞선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당시로선 도발적인 주장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전시에 나온 조선 후기 8폭 병풍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는 사행 화가의 눈에 비친 청나라 수도 연경(지금의 베이징)이 얼마나 놀라웠을지 짐작케 한다. 저자를 가득 메운 사람과 수레, 상점, 크고 작은 토목공사, 길거리 공연 등 왁자지껄한 활기가 아주 볼 만하다.

추사가 1844년 유배지 제주도에서 그린 명작 '세한도'도 오래 전 1809년 사행의 인연에서 나왔다. 당시 사행에 동행한 역관 이상적은 중국에 갈 때마다 새 책을 구해 보내주고 중국 내 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줬는데, 그게 고마워서 그려준 그림이다. '세한도'에 붙은 여러 중국 문인들의 발문은 이상적이 중국에 이 그림을 들고 가서 받아온 것이다. 사행을 20회 이상 다녀온 그는 시문집 '은송당집'(恩誦堂集)을 생전에 연경에서 발간할 만큼 뛰어난 문인이기도 했다.

이밖에 뱃길 사행의 여정을 기록한 '항해조천도(航海朝天圖)', 화원화가 이필성의 '심양관도첩(瀋陽館圖帖)', 사행을 통해 만난 양국 관리들이 주고 받은 시와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15일까지.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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