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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120년 전의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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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120년 전의 한류

입력
2011.10.2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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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1893년) 11월 9일 고종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조선의 대표로 참석한 뒤 귀국한 참의내무부사 정경원을 불러 물었다.

"우리 물품을 보고 뭐라 하더냐?"

"우리 물품을 처음 보기 때문에 각국의 구경꾼들이 복잡하게 모여들어 응대할 겨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정경원)

"알게 된 서양인들이 많았느냐?"

"명함을 주고받은 자가 몇 천명이나 됐고 빈번하게 상종한 자도 더러 있었습니다."(정경원)

번듯한 전통식 기와 가옥에 옷감, 발, 자리, 자개장, 병풍 등 40여 점을 전시해 당시 1,140달러어치를 팔았으니 정경원으로서도 조선이 최초로 참가한 박람회의 성과를 고종에게 한껏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왕의 사무를 기록한 승정원 일기에 전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경원이 미처 고하지 못한 일이 있었으니 '에드윈 해리슨 맥헨리'라는 한 미국인이 조선 부스를 방문한 일이다. 북태평양 철도회사(Northen Pacific Railway co.) 수석엔지니어인 그는 기와 가옥에 내걸린 태극기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필시 정경원에게 이것저것 물었을 것이고, 정경원은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은 의미를 통역관을 통해 설명해줬을 것이다. 북서부 최초의 대륙횡단 노선을 건설하던 북태평양 철도회사는 당시 회사의 로고를 구하고 있던 참이었다. 맥헨리는 곧바로 회사에 이 아이디어를 전했다. 맥헨리는 태극기를 본 순간 '(회사 로고로) 오랫동안 찾아왔던 바로 그 상징'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이 회사는 '행운'과 '훌륭한 운송'의 의미로 태극 마크를 채택했다.(위키피디아)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을 끼고 있어 '옐로스톤선'이라고도 불리는 북태평양 노선 열차는 그로부터 120년 동안 태극 로고와 함께 5대호에서 태평양 연안인 워싱턴주의 푸젯사운드(타코마)까지 1만㎞에 이르는 북서부지역을 매일 가로지르고 있다.

3년 전 옐로스톤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도시 스포캔의 한 휴게소 게시판에서 이 태극 로고와, '1890년대 채택됐으며 한국 국기(Korean Flag)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설명문을 발견하고 잠시 전율을 느꼈다. 삼성, LG의 전자제품과 현대ㆍ기아차의 자동차가 나름 인기를 얻기 100년도 훨씬 전에 조선의 상징이 미국인의 마음을 샀다니….

새삼 역사에 묻혀있던 한류의 원류(源流)를 캐낸 듯한 당시 느낌을 떠올리게 된 것은 고종이 1900년 독도 주권을 선포한 날인 지난 25일 '독도의 날'기념식에 등장한 독도사랑티셔츠 때문이다. 태극과 4괘를 창조적으로 변형한 여러 종류의 티셔츠를 보면서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기법 상 상업적 활용을 금하지 않는데도 국기의 존엄성에 대한 국민의 지극한 배려 때문인지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업화하는 노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 외국의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닐 때마다 자국 국기를 형상화한 티셔츠나 후드 등이 널린 것을 봐 왔지만 국내 관광지에서는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심지어 외국인 관광객의 단골 쇼핑코스인 서울 명동이나 남대문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맥헨리는 태극기를 본 감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고, 소박하지만 매력적이다."(Simple yet Effective, Plain yet Striking)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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