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가 던지는 구질은 크게 직구와 변화구다. 그러나 타자들의 타격 기술이 날로 향상되면서 투수들의 구질도 다양화하고 있다. 직구만 해도 포심 패스트볼(Four Seam Fastball), 투심 패스트볼(Two Seam Fastball), 싱킹 패스트볼(Sinking Fastball) 컷 패스트볼(Cut Fastball)로 진화했다. 흔히 반포크볼(Forkball)로 불리는 스플리터(Split Fingered Fastball)도 사실 직구의 변종이다.
변화구도 가장 기본적인 커브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너클볼, 팜볼 등 무궁무진하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일본인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메이저리그 데뷔 당시 자이로볼이라는 ‘마구’를 던진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투수들의 구종이 변형을 거쳐 진화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딱 하나다. 바로 강타자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는 올 포스트시즌에서 투수들은 각자의 필살기를 앞세워 타자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2011년 가을잔치를 지배하고 있는 투수들의 스터프(Stuff)를 살펴본다.
▲준PO는 윤석민의 슬라이더-윤희상의 포크볼
비록 SK의 리버스 스윕으로 끝났지만 1차전을 지배한 KIA 에이스 윤석민의 슬라이더는 명불허전이었다. 올시즌 투수 부문 4관왕을 차지한 윤석민은 지난 8일 1차전에 선발 등판, 생애 첫 포스트시즌 완투승(9이닝 1실점)을 거뒀다. 150km대의 직구도 일품이었지만 SK 타선을 농락한 주무기는 역시 슬라이더였다. 최고 143km를 찍은 윤석민의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SK 타자들은 알고도 못 쳤다.
그러나 윤석민의 슬라이더는 4차전에서 SK 윤희상의 포크볼에 판정패했다. 지난 2004년 입단 후 통산 3승에 그쳤던 윤희상은 대한민국 최고 에이스 윤석민과의 맞대결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6과3분의2이닝 무실점 호투를 이끈 필살기는 위력적인 포크볼이었다. 직구와 똑 같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다 뚝 떨어지는 예리한 포크볼에 KIA 타자들은 연방 헛방망이를 돌렸다. SK는 윤희상의 깜짝 호투에 힘입어 1패 후 3연승을 달리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PO는 박희수의 투심-장원준의 체인지업
준플레이오프 2차전부터 SK의 필승 계투조로 활약한 왼손 박희수는 롯데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박희수는 ‘왼손 투수는 오른손 타자에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속설을 깼다. 박희수의 올시즌 우타자 피안타율은 1할3푼5리에 불과했다. 좌타자 피안타율(0.232)에 비해 1푼 가까이 낮았다.
박희수가 오른손 타자를 잡는 주무기는 상무에서 연마한 투심 패스트볼이다. 우타자 바깥쪽에서 떨어지는 박희수의 투심에 이대호, 홍성흔 등 롯데의 내로라하는 강타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4차전에 구원등판, 팀을 벼랑 끝에서 구해낸 롯데 왼손 에이스 장원준의 체인지업(Change-up)도 인상적이었다. 장원준의 몸쪽 슬라이더를 예상했던 SK 타자들은 바깥쪽에 절묘하게 제구된 체인지업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2차전 승리 투수였던 롯데 송승준의 포크볼도 위력적이었다.
▲KS는 차우찬-오승환의 돌직구
삼성과 SK의 한국시리즈에서는 불 같은 강속구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규시즌을 마치고 20일 가까이 충분한 휴식을 취한 삼성 투수들의 볼끝에는 힘이 넘쳤다. 1차전에서 5회 매티스를 구원 등판한 왼손 에이스 차우찬은 팔꿈치 통증을 겪었던 투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력적인 직구를 뿌렸다. ‘쳐볼 테면 한번 쳐보라’는 배짱을 갖고 한 가운데로 꽂아 넣었다. 총 투구수 36개 가운데 70%에 가까운 23개가 직구였고, 최고 구속은 149km까지 나왔다.
1, 2차전에 잇따라 등판한 안지만도 ‘불펜의 선동열’답게 주무기인 강속구를 앞세워 SK 타자를 제압했다. 1과3분의2이닝을 던지며 삼진으로만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아냈다. 백미는 ‘끝판대왕’ 오승환의 돌직구였다. 2경기 연속 세이브를 따낸 오승환은 이틀간 총 39개의 공을 던졌는데 이 중 직구를 33개(85%)나 구사했다. 26일 2차전에서는 2이닝을 던지면서도 최고 152km까지 전광판에 찍혔다. SK 타자들은 이틀간 오승환에게 헛스윙 삼진 6개를 당했다.
레퍼토리가 단순한 오승환이 뻔히 직구를 던질 것을 알면서도 공략을 못한 것은 그만큼 구위가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오승환의 직구에는 엄청난 회전이 걸린다. 지난 7월 5일 인천 SK전에서 초당 최대 회전수 57회를 기록했다. 보통 투수들의 직구보다 10회 이상 더 많은 회전이 걸린다.
직구의 경우 회전력이 좋을수록 중력의 저항을 덜 받는다. 따라서 공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듯 들어간다. 이른바 ‘라이징 패스트볼’이다. 오승환 직구의 회전 비결은 독특한 그립에 있다. 그는 검지와 중지를 실밥에 그대로 밀착시키지 않고, 찍어서 공을 잡는다. 받침대 노릇을 하는 엄지도 꺾어서 공을 쥔다. 레슬링 선수보다도 더 센 손가락 악력이 뒷받침하기에 가능한 그립이다. 이렇듯 찍어서 던지면 마찰력이 커져 회전이 극대화된다.
2차전에서 5와3분의1이닝동안 삼진 10개를 잡은 삼성 선발 장원삼의 슬라이더, 6회 2사 2ㆍ3루에서 김강민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권오준의 서클 체인지업도 승부를 가르는 필살기였다. 반면 SK 타자들은 삼성 투수들에게 철저히 힘에서 밀리며 2경기에서 무려 29개의 삼진을 당했다. 2차전에서는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삼진(17개) 불명예까지 뒤집어썼다.
한편 삼성과 SK의 한국시리즈 3차전은 28일 오후 6시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다.
이승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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