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변화를 택했다. 박원순 야권 단일 후보의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 중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서울시민들이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시민사회운동가에게 수도 서울을 맡긴 것은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 한번 바꿔보자는 의사를 표출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집권세력인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심판한 것이지만, 넓게는 기성 정당정치에 경고를 보낸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울시민, 나아가 국민들이 바라는 변화는 무엇인가. 선거과정과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표출된 민심은 살기 어렵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현실이 어려워도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공부해도 취직하기 힘들고 헌신적으로 일했는데도 퇴직 후 노후가 불안한, 절망이 가득한 상황이다.
이런 현실 인식은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하고 있었다. 그들도 입만 열면 청년실업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걱정하고 일자리 창출과 복지를 외쳤다. 하지만 국민들은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아닌 시민사회운동가를 택했다. 기성 정치권이 말과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국민들의 바람, 기대와는 유리된 채 보수와 진보의 이념논쟁,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대립과 갈등에 매몰된 그들만의 리그를 심판한 것이다.
민심이 변화를 택한 이상 정치권은 크게 변해야 한다. 단순히 '대오각성' '겸허히 수용'이라는 식의 뻔한 수사(修辭)로 넘어갈 수는 없다. 그 누구보다 패자인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본질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500만 표 이상의 압도적 지지로 이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한나라당에 과반수 의석인 153석을 안겨주었던 민심이 떠난 이유는 오만한 인사, 야당은 물론 당내 비판마저 외면한 소통부재의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킨 성장 중심의 국정기조를 우선 지적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한나라당은 고전할 수밖에 없다. 당장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부터 휘청거리고 있지 않은가.
민주당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야권 연대가 힘을 발휘했지만, 서울시장 후보도 내지 못한 제1야당이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지도부 책임론은 그야말로 지엽적인 문제이고,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빨려들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쇄신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불안정성도 걱정되는 상황이다. 자칫 분열만 노골화하고, 새로운 시대정신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외형적 통합에만 그친다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박 당선자도 이런 지적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거에서 이겼지만, 서울시민들이 완전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선거 과정에서 지적된 대기업 협찬이나 양손 입양 문제들은 공직의 엄정함을 말해주고 있다. 서울시장의 위치는 비판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민심이 변화를 택했다고 해서 서울시의 기존 정책을 송두리째 바꾸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내 삶을 바꾸는 첫 번째 서울시장'의 약속은 보다 진지한 처신, 더욱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시장으로 그를 택한 민심이 옳았음을 증명하면서 실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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