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서울시장 보선 결과는 민심이 여권에 등을 돌렸음을 보여줬다. 나아가 기성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보선은 5개월 보름 앞으로 다가온 19대 총선의 전초전 격이었다. 개표 결과 민심이 무소속 박원순 당선자와 야권을 택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야권의 총선 전망은 한층 더 밝아졌다. 반면 한나라당엔 비상등이 켜졌다.
앞으로 정국 주도권은 당분간 야권이 쥐게 됐다. 야권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고, 현재 기세를 몰아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많다. '안철수 바람'은 이제 태풍이 됐고, '박근혜 대세론'은 타격을 입은 점도 총선 전략 상 야권에게 유리한 대목이다.
그러나 박원순 후보의 승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 내에서도 상당한 갈등이 빚어질 것을 예고한다. 민주당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및 박 당선자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 세력, 친노 세력 등이 야권 통합 및 총선 공천 과정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안 원장이 총선을 겨냥해 신당 창당을 모색한다면 야권 전체가 요동치게 된다.
민주당은 일단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내는 그리 편치 않다. 박 당선자의 승리가 민주당의 총선 승리 가능성을 높인 게 아니라, 오히려 위기에 빠뜨린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거치며'서울시장 보선에 후보도 내지 못한 제1야당'이라는 꼬리표를 얻었고, 야권 내 주도권을 시민사회 세력에게 상당 부분 넘겨 줬다. 이에 따라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 현역 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들에게 대대적인 물갈이 압박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지역 의원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내년 총선은 이명박 정부 임기 말에 치러지는 선거라 여당인 한나라당에 가뜩이나 힘든 승부가 예상됐었는데, 이번 선거 패배로 더욱 암담한 상황이 됐다.
한나라당은 불과 6개월 만에 민심을 돌려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됐다. 여권에선 벌써부터 인적 쇄신과 당명 변경을 비롯한 '당 환골탈태론'이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홍준표 대표 등 현재 당 지도부 교체 여부를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요구가 비등해진다면, 박근혜 전 대표의 역할론이나 새 인물 영입론 등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공천 물갈이 바람은 '쓰나미' 수준이 될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5개월 보름은 긴 시간이고, 한나라당이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라고 애써 위안하는 분위기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박 당선자가 본격적인 검증대에 오르면 박 당선자 본인과 진보좌파 세력의 약점들이 드러날 것"이라며 "그 결과 시민사회 세력의 전면 등장에 대한 역풍이 불고 보수세력이 결집해 총선 때 분위기가 반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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