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을 닮은 양 갈래 장발의 사나이 얼굴을 커다랗게 그린 지포 라이터의 뚜껑이 열려 있다. 인상적인 이 라이터 사진을 표지 가득 담은 책 <뚜껑 열린 한대수> (선 발행)에는 휘발유가 아니라 이 사나이, 한대수의 육성이 기화해 분출한다. 뚜껑>
어느덧 63세. 그는 사진에세이집이라고 해야 할 이 책을 '사랑하는 딸 양호에게!'라고 운을 뗀 뒤 '나는 이 지구를 걷지 않고 있더라도 항상 네 곁에 있다. 걱정 마라. 하늘을 쳐다보면 내가 웃고 있을 것이다'라는 글로 시작한다. 22살 연하의 몽골계 러시아 부인 옥사나, 이제 겨우 4살 난 딸 양호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 책은 '영원히 사랑하는 Papa'가 들려주는 뜨거운 서신집이며 동시에 차가운 사진집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는 부인을 둔 육순의 사나이가 여전히 희망을 부여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김중만, 조세현, 박준 등 프로 사진 작가 5명의 렌즈는 냉정하게 포착한다. 그와 그의 주변을 담은 182컷의 사진들과, 시 같기도 수필 같기도 때로는 욕 같기도 한 그의 글이 서로를 탐하며 묘한 영기를 발산하고 있다.
사회와 예술에 대한 발언을 담은 책의 많은 부분은 한대수의 비판 정신이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뉴욕과 제3세계 뒷골목을 향한 예리한 시선은 젊을 적 '물 좀 주소'의 연장이다. 김민기 등 한국 가수들과 공연하는 모습들은 영원한 히피, 한대수의 현재다.
마침내, 양호에 대한 그의 사랑으로 모든 것은 화해한다. 옥사나의 젖을 물고 있는 딸의 사진까지, 자신의 좁은 아파트 마루에서 발가벗은 양호를 좋아라 껴안고 있는 육순의 몸까지 보여주는 이 책을 보면 '뚜껑 열렸다'는 제목에 마침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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