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사람들이 요새 걱정이 많대. 도대체 누굴 찍어야 좋을지." "그러게 말이야, 우리 고향 친구들도 수시로 그런 전화를 걸어 와." 어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앞서 들었던 농담이다. 대통령선거를 연상시킬 만큼 엄청난 양의 관련 보도가 전국을 폭격하다시피 했으니, 얼마든지 있을 법한 착각이다.
이 농담이 비틀어 짚은 것은 이런 착각만이 아니다. 정치담론으로 지새우는 듯한 세상의 겉 모습과는 달리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적 지각변동을 부르고, 내년 대선과 직결될' 이 '중대한' 선거를 여전히 남의 일로 여긴다는 뜻으로 들렸다. 실제로 언론의 집중적 조명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은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53.9%)보다 많이 낮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핵심
왜 이런 괴리가 생겼을까. 모이기만 하면 화제로 삼을 정도로 뜨거웠던 관심이 왜 출퇴근길에 잠깐 투표소에 들르는 작은 노력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한 것일까.
우선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나 세력 탓이 크다. 외침은 떠들썩했지만, 유권자의 피부에 닿아 기대를 심을 만한 다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사업에 비유하자면, 성공의 DNA인 주관적 욕구(Desire)와 객관적 수요(Needs), 동원할 자산(Assets)을 고루 갖추지 못한 결과다.
이런 '불완전 전달'은 정치인이 빠지기 쉽고, 또 그래 보이려고 애쓰는 거창한 명분에 의해 확대된다. 정치행위의 이유로 그들은 으레 '나라와 국민을 위한 큰일'을 든다. 이런 태도가 쌓이다 보니 적잖은 국민도 그렇게 여기고 기대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정치는 그리 고상한 게 아니다. 일본에서 '정치(政治)'가 '폴리틱스(Politics)'의 번역어로 확립되기 전까지 동양 전통사회에서 정치는 '정사(政事)', 즉 '정(政)하는 일(事)'이었다. 이 '정사 정(政)'의 오른쪽인 '등글월 문(攵)'은 '칠 복(攴)'의 간편형이다. 복(攴)은 매질할 때의 소리를 나타낸 '점 복(卜)'과 오른손을 가리키는 '또 우(又)'를 합친 글자로, 원래는 '오른손으로 소리가 나게 때리다'이고, 막대기나 회초리로 때리는 것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됐다. 그러니 '가르칠 교(敎)'가 '회초리를 쳐서 효(孝)를 행하게 하다'는 말이듯, '정(政)'은 '(백성을) 매질해 올바르게 하다'는 뜻이다. 백성을 지배 대상으로 여겼던 전제 왕권과 지배층의 인식이 그대로 묻어난다.
물론 성군의 정치마저 그럴 리 없다. 그들의 정치는 '정사'보다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세상을 조화롭게 다스려 백성을 구한다'는 쪽이었다. 여기서 백성은 지배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이상적 목적인 '편안하게 해주어 할' 대상이 된다. 이 '경세제민'을 줄인 일본의 번역어가 '경제(經濟)'라는 사실이 공교롭다.
결국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치이고, 주관적 정치행위의 동기도 다름아닌 '먹자'다. 민주정치의 꽃인 선거는 '이렇게 국민을 먹이겠다'는 지혜를 유권자 앞에 다투어 먹을 것을 차지하려는 과정이다. 또 정당정치는 무리를 지어 먹거리를 차지해 나누되, 국민을 더욱 잘 먹이겠다는 집단적 다짐의 다툼이다.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야
말이 거친 듯하지만 이것이 정치와 선거의 본질이어서 굳이 분칠할 이유가 없다. 정치인과 정당을 비롯한 정치집단, 유권자 모두가 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시민에게 먹이는'방법론을 집중적으로 다투는 솔직한 선거였다면 야단법석에 비해 투표 참여라는 결과가 이리 초라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애초에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본령인 무리 짓기가 지나치게 범위를 넓혀 전면적 '편 가르기'로 치닫는 현상이 언짢은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광범위한 편 가르기는 당장의 정치동원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회의적 유권자를 늘리는 반작용을 부르기 쉽다. 투표권 없는 경기도민이 엿본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작은 가르침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