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연의 우수성을 알리는 동시에 공연 한류의 가교 역할을 해야죠."
중국에서 초청 연출가로 공연을 준비 중인 대구 출신의 연출가 이상원(50)씨의 야무진 포부다. 그는 중국 장쑤성(江蘇省) 우시(無錫)의 신항미디어그룹이 12월 말부터 공연할 예정인 넌버벌 퍼포먼스 '당백호점추향(唐佰虎點秋香)'의 연출을 맡아 중국에 머물고 있다. 최근 잠시 귀국해 기자와 만난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이씨는 2008년 "문화 중심지 서울과 지방의 심리적 격차를 줄여 보겠다"며 무모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구산(産) 창작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를 서울 대학로 무대에 올렸던 인물. 그리고 지역 기반 연출가로는 드물게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연출료와 체재비 등 계약 조건도 좋다. 중국의 초빙은 2007년에 한인상회 초청으로 '만화방 미숙이'를 우시에서 공연한 것이 인연이 됐다. 도전 정신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요즘 중국인들 사이에는 세계 2위 경제 대국 규모에 걸맞은 문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어요. 전국적으로 콘텐츠 발굴에 열심이지만 우수 창작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요. 장이머우 감독 같은 몇몇 거장에게만 작품 의뢰가 쏠리고 있어 한국의 우수 창작 인력들이 관심을 가져볼 만한 시장이라고 봅니다."
그는 가요계 한류를 이끌고 있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인용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닌 '메이드 바이 코리아' 콘텐츠 제작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중국 공연 시장은 한국에서 제작한 콘텐츠를 들고 나가기보다 현지 파트너와 손잡고 일종의 기술이전 방식으로 진출하는 게 좋다"는 게 그가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그가 연출하는 '당백호점추향'도 중국 배우들이 출연하고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당백호가 추향을 점찍었다는 뜻으로, 서화에 뛰어난 당백호란 인물이 화태사의 집 시녀로 있는 추향이란 여인에게 반해 신분을 속이고 이 집 하인으로 들어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대사 없이 코믹한 연기와 무술 위주로 90분간 진행된다. 이 작품을 중국의 대표적 문화 상품으로 키우겠다는 것이 중국 제작사의 목표다.
그는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드라마를 찾아 볼 만큼 중국 젊은이들이 한국에 큰 환상을 갖고 있다"며 "공연 한류에도 지금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2008년에 '만화방 미숙이'를 왜 무리해 가면서 서울에서 공연을 했나 싶어요. 문화 콘텐츠 발굴에 이제 막 눈을 뜬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데 말이죠."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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