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문제는 그리스가 아니라 이탈리아다.”
막대한 국가채무 때문에 주말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집중성토를 당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26일 열리는 2차 정상회의에서도 동네북 신세가 될 처지다. “디폴트를 피하려면 정상회의 전까지 재정개혁안을 들고 오라”는 EU 정상들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연립정권 내 이견 때문에 숙제를 마치지 못한 채 브뤼셀 회의장으로 가게 된 때문이다.
1차 정상회의에서 독일을 위시한 유로존 국가들은 이탈리아에 추가 긴축조치를 요구했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보증을 받으려면 허리띠를 더 졸라매라는 것이다. 지난달 이탈리아 의회를 통과한 540억 유로의 긴축안은 한참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유로존 요구의 핵심은 연금개혁(은퇴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상향)을 포함한 추가 재정삭감이다.
그러나 이 제안을 들고 이탈리아로 돌아간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연정 파트너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BBC 방송에 따르면 움베르토 보시 북부동맹 당수는 “연금문제는 건드리지 않겠다”며 “은퇴연령 상향은 독일만 좋을 일을 시키는 조치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내부단속도 못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재정위기 해결을 주도하는 ‘메르코지(메르켈과 사르코지의 합성어)’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EFSF 추가 증액 문제에서 야당의 지지까지 얻어낸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때문에 2차 정상회의는 이탈리아 문제에 발목이 잡혀 전향적 결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BBC 방송의 유럽 에디터 개빈 휴잇은 ‘메르코지’가 합심해 이탈리아를 몰아세우는 것을 음모론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기회에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밀어내고 개혁을 제대로 수행할 새 지도자를 세우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계속해 책임을 그에게 돌리고 권력기반이 취약한 연정의 갈등을 조장하면 결국 그가 백기투항(사임) 할 수밖에 없다는 시나리오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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