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시장에 불이 붙었다. 지난 1~2년 새 쿠쿠홈시스와 LG전자, 동양매직 등 가전 강자들이 정수기 제조에 뛰어든 데 이어 최근엔 스팀청소기 시장의 대명사 한경희생활과학까지 시장진출을 선언했다.
업계에 따르면 정수기 시장의 보급률은 대략 45%.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정수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업체만 무려 200여 개 업체가 난립 중이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이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한 증권사 가전담당 애널리스트는 정수기 시장에 대해 "이상하게 계속 성장하고 있다" 고 말했다. 다른 가전제품과 비교하면 성장률이 꺾일 시점이지만, 정수기 만큼은 판매량이 계속 늘고 있다는 것.
업계는 이런 정수기 시장의 포화 없는 무한성장을 '물'을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와 관련시키고 있다. 실제로 생수산업이 발달한 나라는 많지만 정수기가 대중화된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뿐이라는 것. 이상구 현대증권 연구원은 "쌀을 씻어 밥을 지어 먹는 등 상대적으로 물의 사용이 많은 문화적 특성으로 정수기 시장이 크게 활성화됐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환경오염으로 갈수록 깨끗한 물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는 상황. 심지어 먹는 물 뿐 아니라, 세안이나 샤워할 때 수돗물을 깨끗한 물로 바꿔주는 연수기 시장까지 등장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후발업체들도 진입 초기 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밥솥으로 유명한 쿠쿠홈시스는 작년 초 정수기 시장에 진출, 1년 만에 10만대를 팔았다. 전체 정수기 시장이 연간 100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그야 말로 단기 급성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쿠쿠홈시스는 밥솥의 강점을 살렸다. 밥을 짓기 위해 물이 필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밥솥을 팔던 판매망과 인력, 관리노하우 등으로 빠른 안착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청소기와 다리미 등을 주로 판매하는 한경희생활과학이 정수기사업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 한경희 대표는 "다음 달 신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며 연간 30만대를 판매해 3위로 올라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수익 측면에서도 매력적이다. 정수기는 판매 보다는 '렌탈'이 주류다. 일시불로 사면 120만원인 제품이, 등록비 10만원과 5년 동안 월 4만원을 내면 고객소유로 넘어간다.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을 하나 팔면 5년 동안 꾸준한 현금수입이 보장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정수기 시장이 마냥 노다지는 아니다. 진입이 쉬운 만큼 위험도 큰 산업이고, 대기업이라고 무조건 성공하는 분야도 아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정상권의 정수기 기업이 다른 문제로 수사를 받게 되면서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며 "그만큼 깨끗한 기업 이미지가 중요한 산업"이라고 말했다.
LG전자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LG전자는 2년 전 야심 차게 정수기 사업을 시작했지만, 여태껏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일각에선 "2004년 밥솥시장의 실패가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다른 정수기 업체들이 방문을 통한 사후관리에 집중한 반면 LG전자는 브랜드 가치에만 의존한 것인 부진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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