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 수석 에드워드 최(사진)가 들고 있던 대형 나무 해머로 나무판을 힘껏 가격했다. 귀가 찢겨질 듯한 타격음이 관현악의 두터운 음을 뚫고 솟았다. 가뜩이나 큰 소리가 마이크로 증폭되고 있었으니 당연지사다. 작두처럼 내려친 그것은 시간의 낫(time's scythe)이었다. 지난 20일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의 '2011 말러 시리즈Ⅲ'은 어둡고도 둔중한 힘이 연주 시간 90분을 지배했다.
"비극적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말러의 '6번'. 긴 연주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는 듯 관객들은 제4악장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날렸다. 지휘자는 환하게 감사의 미소를 던졌고, 객석은 기나긴 박수로 화답했다. 말러 탄생 150주년, 서거 100주년을 맞아 진행되고 있는 이 시리즈 콘서트에서 긴 연주시간은 오히려 감동으로 배가됐다.
"말러가 나무 망치에서 기대한 것은 금속성이 아닌 둔탁한 소리의, 운명의 타격이었죠." 대표적인 말러리안(말러 애호가)으로 평전 <구스타프 말러> 를 시리즈로 낸 김문경(40)씨의 해석이다. "제대로 연구가 되지 못한 작곡가인데, 정명훈씨의 말러는 감정과 템포의 폭이 넓으며 모던한 사운드가 인상적이죠." 시리즈 콘서트를 열고 있는 정씨의 말러 해석 덕에 한국은 이 작곡가에게서 비주류라는 딱지를 막 뗀 서구보다 앞서고 있다는 김씨의 말이다. 구스타프>
6번은 말러가 보여준 독특한 인생 편력과 짙게 중첩, 짙은 여운을 남긴다. 유대인이라는 태생적 한계, 딸의 죽음, 자신을 짓누르던 오케스트라 스케줄의 압박. 게다가 부인 알마의 외도까지 겹친 시기에 작곡된 6번의 가장 합당한 해석은 "생의 아이러니에 대한 깊은 통찰"일 것이다. 기실 관련자들의 진술부터가 묘하게 굴절돼 있다.
그와 깊은 교감을 나눈 지휘자 브루너 발터는 "처절하고 염세적이며 인간의 삶에 쓴 맛을 남기는 곡"이라며 "모든 것에 대한 냉혹한 투쟁의 음악"이라고 했다. 알마는 훗날 "그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이고 예언적인 곡"이라 했다. 말러 본인은 "수수께끼를 던진 것"이라며 "이전의 다섯 교향곡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이해한 세대만이 구할 수 있는 해답을 담고 있다"고 했다. 단서치고는 인색하다.
서울시향 부악장 신아라(27ㆍ바이올린)씨의 말을 들어보자. "객석과는 물론 연주자들끼리도 하나가 됐던 자리로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말러의 희망과 절망에 대해 지휘자가 세세히 이야기해준 덕분에 말러가 그 곡 썼을 때의 심정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시향의 사운드가 객석에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며 나흘 꼬박 가졌던 연습의 성과를 음미했다. 말러 시리즈 콘서트는 7번(11월 11일), 9번(12월 9일), 8번(22일) 연주로 완결된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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