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전ㆍ의경제도를 폐지하고 직업경찰관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했다. ‘궁극적으로’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국가기관으로서 최초의 권고라는 점에서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인권위는 2008년 9월 “부대 안에서 구타나 가혹행위가 줄지 않고 있으니 관계자를 징계하고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당시 부대를 실제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 개선방안까지 제시했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자 이번엔 아예 ‘폐지’를 공식 언급했다.
육군 징집 후 차출된 전투경찰순경(전경)과 지원절차를 거친 의무경찰순경(의경)은 신분이 현역 군인이다. 차출과 지원이라는 차이가 있고, 업무가 시위 진압과 경찰 보조로 구분돼 있지만 군대적 질서와 규율로 관리ㆍ통제되고 있다. 서울 외 대부분의 지역에선 시위 진압과 경찰 보조 업무가 구별되지 않고 있다. “군인을 시위 진압에 동원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일탈한 편법”이라거나 “전ㆍ의경 모두가 양심과 인권을 침해 당하고 있다”는 지적은 마땅하다.
경찰복을 입은 군인으로서 민간인과 항시 접촉하다 보니 많은 유혹과 복무염증 등에 시달릴 우려가 크다. 지휘관의 관심이 더 커야 하고 관리와 교육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도 갖가지 불상사가 끊이지 않아 최근엔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하다 암이 발병해 사망한 경우까지 있었다. 인권위의 지적대로 당국의 대응이 부대 해체나 근무지 변경 등 1회성이고 전시성으로만 흐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정부는 ‘2012년부터 전ㆍ의경제도 폐지’를 검토했다가 예산문제로 흐지부지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까지 2012년부터 인원을 최소화하겠다거나, 2015년부터 폐지하겠다는 식의 검토의견만 내놓고 있다. 전ㆍ의경이 치안의 상당 부분을 맡고 있는 현실에서 무작정 폐지는 위험하다는 정부의 인식엔 수긍할 대목이 있다. 그렇다면 ‘궁극적 폐지’라는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면서, 그때까지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각종 규칙과 법령을 서둘러 손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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