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집권 여당인 보수당 내 반란은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졌다.
영국 하원은 24일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묻자는 동의안을 찬성 111명, 반대 483명으로 부결시켰다. 애초 동의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은 물론 야당인 노동당 조차 EU 탈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수당의 당내 이반이 심각했다는 점이다. 보수당 내 소장파 등 의원 70명이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동의안을 제출할 때만해도 당내 작은 목소리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표결 결과는 캐머런 총리의 패배라 하기에 충분했다. BBC 방송은 “보수당 내 반란표가 예상을 뛰어넘는 80표 이상이나 나왔다”고 전했다.
캐머런 총리는 표결에 앞서 “EU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기를 원한다는데공감한다”면서도 “주변국이 불에 타는데 어떻게 끌 것인가가 중요하지 어떻게 도망갈 것인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당이 한 목소리를 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의 유럽 정책에 대한 보수당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같은 보수당의 찰스 워커 의원은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냐”라며 공개적으로 되받았다.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는 “캐머런 총리의 굴욕”이라며 “소속 의원들도 설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국익을 위한 논쟁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며 맹공을 가했다. 유럽의 재정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상당한 부담을 짊어지면서도 EU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캐머런 총리를 질타한 것이다.
밀리밴드 당수의 발언은 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캐머런 총리가 겪은 수모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캐머런 총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참여하지 않는 EU 회원국도 26일 열리는 2차 정상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입 다물라”는 등 막말에 가까운 면박을 당했다. 영국은 EU 회원국이지만 유로존에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캐머런 총리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2차 정상회의에서 영국의 국익에 어긋나는 결정이 나올 경우 유럽통합 회의론자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데일리메일은 “경제주권을 지켜내지 못하면 다음 선거까지 정치적 공세에 시달릴 것”이라고 전했다. 캐머런 총리는 2차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번 주 예정된 뉴질랜드 일본 방문을 취소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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