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카드해지에도 '우대리스트' 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카드해지에도 '우대리스트' 있다

입력
2011.10.24 17:33
0 0

간호사 김모(34)씨는 24일 하나SK카드를 해지하려다 울화통이 터졌다. 자동응답전화(ARS) 메시지를 한참이나 들은 뒤에 '해지' 번호를 눌렀더니 "상담원이 모두 통화 중이라 3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음성이 나왔다. 10분 가까이 수화기를 들고 있었으나 연결은 되지 않고 '더 기다리거나 이전 메뉴로 돌아가라'는 자동음성만 반복될 뿐이었다.

김씨는 "이전에도 도무지 연결이 안돼 카드 해지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불평했다. 게다가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의 통화비용마저 고객 부담이다. 결국 직접 하나은행을 찾았더니 이번엔 "안 쓰면 되니 그냥 가지고 계시라"는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카드사의 신용카드 발급은 일사천리지만 해지는 첩첩산중이다. 전화연결부터 잘 안 되는데다,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리다 막상 연결에 성공해도 연회비 면제, 특별 사은행사, 포인트 추가적립 등 갖은 당근을 제시하며 고객들의 판단을 흐린다. 심지어 애써 쌓은 포인트가 사라질 수 있다는 협박용 회유도 서슴지 않고, 다른 카드를 권하기도 한다. 카드를 해지하느니 차라리 서랍에 처박아두는 게(휴면카드) 상책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기자도 이날 한 카드사에 ARS 신용카드 해지를 시도했더니 역시 10분 가까이 지난 뒤에야 상담원과 연결이 됐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후 해지 절차는 순식간에 진행됐다. 시간을 끌거나 사실상 해지를 방해하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

일명 우대리스트, 실상은 블랙리스트에 기자가 속한 탓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마다 해지 전담팀을 두는데, 고객의 직업란에 기자나 금융회사직원 경제부처공무원 청와대 등이 기입돼 있다면 뒤탈을 우려해 우대리스트로 관리하며 신속하게 해지 해준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카드사의 횡포에 대응할 수단을 갖추지 못한 일반 고객들은 카드 해지 과정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이처럼 까다롭고 복잡한 신용카드 해지 과정을 대폭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고객의 불편과 불만을 줄이기 위해 카드사들이 신원을 확인하는 즉시 고객의 해지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카드상품 권유, 반대급부 제공, 상담 지연 등의 해지 방해 관행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를 올해 안에 발표할 신용카드 구조개선 종합대책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금융감독원 역시 카드사들이 카드 해지 등 고객과의 전화상담 과정에서 소비자권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감독을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조치에는 노림수가 하나 더 숨어있다. 카드 해지를 쉽게 하도록 하면 휴면카드를 줄일 수 있고, 결국 2003년 카드대란 직전을 떠올리게 할 만큼 최근 발급이 급증한 카드 숫자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활동 1인당 신용카드 수는 4.9장으로 카드대란 직전(4.6장)보다 많다. 올 상반기까지 발급된 신용카드는 2002년에 비해 2,000만장 가까이 늘어나 1억2,200만장을 넘어섰다. 발급만 받고 1년 이상 쓰지 않는 휴면카드도 6월말 현재 3,295만장으로 지난해 말(3,129만장)보다 5.3%(166만장)나 늘었다. 전체 카드의 4분의1이 잠을 자거나 해지가 막혀 있는데, 신규 발급은 늘어나는 형국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발급된 카드는 카드대란 당시 1억장보다 많은 수준이라 카드 해지절차 간소화를 통한 휴면카드 줄이기 등 다양한 카드 감축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드사들은 "신용카드 여러 장으로 돌려 막기를 했던 카드대란과 달리 현재는 다양한 서비스를 받으려고 카드를 여러 장 보유하는 추세"라고 반박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