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정도는 진정성이다. 이벤트나 술수로 목적을 달성하는 정치는 대부분 단명했다. 국민의 마음을 얻고 시대변화를 이끌었던 정치는 진정성에 바탕을 두었다. 세세한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산업화 정책이나 민주화 투쟁이 바로 진정성 있는 정치의 대표적 경우다.
이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한미FTA 처리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연설 때문이다. 산업화나 민주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미FTA도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그 처리과정 또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희태 국회의장이 24일 여야 원내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불쑥 제안한 것은 설익은 처사였다. 취지는 좋다. 이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 중 상ㆍ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했으니 우리 국회에서도 설명하는 성의가 필요하다는 차원이다.
그러나 아무리 뜻이 좋아도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최선을 다하려 했다는 제스처에 불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울시장 선거를 이틀 앞두고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했다면 너무 안이하다. 이 대통령이 2008년 7월 18대 국회개원 연설과 10월 시정연설 이후 국회에 온 적이 없는데, 박 의장이 한마디 한다고 야당이 덥석 받아줄 리 만무했다. 더욱이 한나라당 황우여,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가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야 원내대표가 선거 직후 적절한 시점에 논의를 공개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대통령과 정부ㆍ여당이 야당의 우려나 요구사항을 얼마나 경청하고 수용했느냐이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국회부의장 원내대표, 자유선진당 대표 등에 전화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고 하면 너무 편의적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의료개혁법안 처리 때 무려 100명의 야당 의원을 만나고 자신에 적대적인 폭스뉴스에도 출연한 바 있다.
민주당 등 야당도 한미FTA를 무산시킬 게 아니라면, 피해대책을 마련하고 투자자 국가제소, 역진방지 조항 등에 대해선 대칭법 제정이나 대미서한 발송 등으로 절충점을 찾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연설을 죽어도 못 듣겠다든지, 절대 처리를 못해주겠다는 자세는 진정성이 없다. 성격과 비중은 다르지만, 민주당이 대법원장 임명동의 표결에 동참했을 때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았던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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