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태 칼럼] '강남귀족'과 '협찬인생'

서울시장 선거가 오리무중이다.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백중지세였으니 투표를 하루 앞둔 지금은 판세를 가늠하기 더욱 어렵다. 후보들은 저마다 어찌 판단하는지 모르나, 내가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은 대개 승패를 점치는 것조차 꺼린다. 남녀노소 가림 없이 그렇다.

아무리 예측하기 힘들어도 각자 생각과 기대가 있을 터인데, 속을 드러내는 것을 애써 삼가는 눈치다. 스스로 세상 변화에 어두운 완고한 어리보기가 되거나, 물정 모르는 철부지쯤으로 치부되는 결과를 내심 저어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달리 말하면 보수 진보 어느 한쪽에 줄 서거나 낙인 찍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바람 빠진 후보들의 진면목

짙은 안개 속 선거는 우리 사회가 세계적 '혼돈의 시대'와 마주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못 유식하고 거창한 담론을 피해 나처럼 범상한 안목으로 보면, 정치적 상징성이 한껏 커진 서울시를 선뜻 맡기기에는 나경원과 박원순 둘 다 마땅치 않은 탓이 크다. 처음엔 둘 다 괜찮은 후보로 비쳤으나, 갈수록 긍정적 자질과 미덕보다 부정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신장개업 가게 앞에서 신나게 춤추던 키 큰 허수아비 인형이 바람이 빠지는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꼴을 닮았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식견이 고상한 이들은'네거티브'선거전을 나무란다. 과연 그게 본질 또는 핵심일까. "나경원은 강남귀족"이라거나 "박원순은 협찬인생"이라고 비웃고 헐뜯는 것은 비록 아름답지 못하지만 제법 근사(近似)한 표현이다. 본인과 맹목적 지지자들은 아니라고 손사래 치지만, 내 안목에는 두 사람 다 그렇게 비친다. 중립적이거나 무당파인 유권자들은 그래서 지지를 망설이거나 바꾸고, 그래서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고 볼 만하다.

네거티브 선거전을 마냥 탓할 일도 아니다. 원래 네거티브 캠페인은 자신의 장점, 긍정적(positive) 자질이나 정책보다 상대 인물과 정책의 부정적(negative)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을 뜻한다. 근거 없는 비방과 음해, 악의적 인신공격에 이르지 않더라도 자신과 경쟁자를 대비시키는 네거티브 전술은 모든 선거에서 예외 없이 사용된다. 이에 비춰 네거티브니, 검증이니 다투는 건 우습다. 유권자에게 중요한 것은 나경원 박원순 둘 다 정직성과 도덕성에 보기 흉한 얼룩과 흠을 지닌 위선적 면모를 드러낸 사실이다.

신중한 유권자들에게 더욱 난감한 것은 품격과 진실성 등 사람 됨됨이를 떠나 사회적 경륜과 능력을 잣대로 가늠하기도 어려운 점이다. 몇 차례 TV 토론 등에서 나경원은 여러모로 반듯한 면모가 돋보인 반면 박원순은 변화를 향한 꿈과 희망을 강조하는 게 두드러졌다. 동시에 나경원은 빈틈없이 똑 떨어지는 모습이 오히려 진실성을 낮추고, 박원순은 놀랄 정도로 허술한 공부와 논리가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보았다.

나경원은 거센 변화 요구를 담기에는 틀이 작게 보였다. 박원순은 세상을 바꾸는 철학과 비전을 되뇌지만 과거에 집착한 탓인지 성장을 멈춘 듯했다. 박근혜와 안철수에 끝내 기대는 바탕일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그렇게 마이너 리그의 가을 야구가 됐다.

진정한 '정치 혁명' 위한 토론을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할 것이다. 어차피 승부는 보혁 힘겨루기, 안정을 바라는 기득권 세대와 불만과 분노에 겨운 젊은 유권자들의 기세 다툼이 좌우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질풍노도와 혁명의 시대에도 정치 리더의 자질과 세계관은 혁명의 향방과 운명을 가른다. 지나친 열정과 조잡한 방책으로 갈등을 부추기며 퇴행하다 추락한 지도자를 우리는 이미 여럿 경험했다. 정치와 사회의 혁신을 바랄 수록 되새길 일이다.

서울시장 선거의 의미를 결코 낮게 보지 않는다. 정치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그 변혁을 올바로 이끌려면 보수든 진보든, 늙든 젊든 투표소로 나가 주권자의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 결과에 웃고 울기보다, 변화의 방향을 정하는 진지한 사회적 토론을 함께 시작해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