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마련한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에 대해 역사학계와 뉴라이트 단체 모두가 반발하면서 기준안 마련 과정이 진통을 겪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는 24일 회의를 열어 국편이 제출한 집필기준안을 심의할 예정이었으나 연기됐다. 교과부 관계자는 "국편이 오늘 오후 늦게 집필기준 시안을 제출했다"며 "조만간 회의 일정을 다시 잡아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편은 지난 17일 집필기준 초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한 뒤 19일 '역사교과서집필기준개발공동연구진' 회의를 열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를 병용하는 방향으로 수정안을 마련했다. 수정안에는 초안에서 삭제됐던 '독재정권'이란 표현을 추가했으며, '대한민국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이란 구절에서 '한반도의 유일한'이란 표현을 삭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역사학계는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병용하는 것이 용어 혼란을 부채질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역사연구회 이인재 회장은 "냉전 이데올로기로 활용된 자유민주주의를 남겨둘 경우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져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며 "졸속 고시된 교육과정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과부는 지난 8월 연구진의 의견과 절차를 무시하고 초중고 역사 교육과정 고시 직전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일괄 변경해 학계의 반발을 불렀다.
역사 교육과정 변경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용어 사용을 주장했던 한국현대사학회측도 국편의 집필기준 수정안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국편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승인했던 1948년 유엔 총회 결의가 38선 이남에 한정된 것이었다는 학계 지적에 따라 '한반도의 유일한'을 삭제키로 했으나 한국현대사학회측은 당시 북한도 유엔으로부터 합법정부로 승인 받은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용어 병용에도 부정적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국편이 제출한 집필기준안을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가 심의해 일부 수정할 수 있다"며 "최종 권한은 교육부 장관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