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문제에서는 좀 닥치고 있어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에게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그것도 면전에서. 정상 간에는 최대한 격식 차린 대화가 오가는 게 보통일 텐데, 무엇이 사르코지를 이토록 화나게 만든 걸까.
영국 일간 가디언은 2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이 유로존 해법을 놓고 치열한 설전을 했다고 보도했다. 대화를 목격한 관계자에 따르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캐머런 총리에게 "당신은 입을 닥치고 있을 만한 좋은 기회를 이미 날려버렸다"며 "우리(유로화를 쓰는 유로존)는 당신이 유로존을 비판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짜증난다"고 쏘아붙였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경위는 최근 캐머런 총리가 "유로존은 빨리 위기해결에 나서야 한다"며 해법 마련에 진통을 겪는 유로존 정상들을 수차례 재촉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유로화를 쓰지도 않고 위기 해결을 위해 돈을 내지도 않으면서 자꾸 훈수만 두려 한다는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캐머런 총리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득녀를 축하하기 위해 신생아 담요를 선물로 가져 갔지만, 독설을 답례로 받게 됐다. 총리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는 회담 직후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의 이익도 보장해야 한다"며 간접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이날 장면은 EU 회원국이면서 유로존 소속이 아닌 영국의 애매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유럽대륙과 불가근불가원 관계를 유지해 온 영국이 재정위기 해결 주도권을 독일과 프랑스에 내주면서 초조함을 노출했다는 것이다.
나라 밖에서 뜻밖의 봉변을 당한 캐머런 총리는 24일 85명의 보수당 의원들이 그의 뜻을 거스르고 EU 회원국 유지ㆍ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추진하면서 여당 안에서마저 영(令)이 안 서는 곤경을 맞았다.
한편 EU 정상회의와 별도로 열린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4,400억유로에서 1조유로 이상으로 상향하고 ▦은행부실을 털어낼 재자본화에 1,000억유로를 투입하며 ▦현재 21%인 그리스 채권 상각 비율을 50~60%로 상향하는 것 등에 의견 접근을 이뤘다. 또 EU 회원국간 경제ㆍ재정통합을 강화하는 쪽으로 EU 조약을 수정하자는 내용도 논의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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