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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레스트리스' 시한부 사랑도 경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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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레스트리스' 시한부 사랑도 경쾌할 수 있다

입력
2011.10.2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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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는 문제적인 감독이다. 미국 고교생이 학생들을 무차별로 살해한 '콜럼바인 사건'을 소재('엘리펀트')로 삼았고, 록그룹 너바나의 자살한 리더 커트 코베인의 최후('라스트 데이즈')를 그리기도 했다. 최근작 '밀크'는 흉탄에 스러진 미국의 게이 정치가 하비 밀크의 삶을 담았다. '싸이코'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동명원작을 그대로 본 따 만들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투사처럼 뜨거운 논쟁을 즐기면서도 영화 속에선 사회 소수자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

언뜻 소재만 놓고 보면 반 산트의 최신작 '레스트리스'(restless)는 전작들에 비해 미지근하다.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니. 하지만 등장인물을 향한 그의 감성 어린 눈빛은 여전하다.

죽음은 먼 나라의 풍문으로나 여길 만할 나이에 사신(死神)을 너무나 가까이 두고 있는 청춘들이 주인공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죽음 강박에 시달리며 숨어살던 에녹(헨리 호퍼)은 말기 암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애나벨(미아 와시코우스카)을 한 장례식장에서 만나며 사랑의 감정을 키운다. 비극적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지만 눈물을 쥐어짜는 멜로는 아니다. 이별이 예정된 사랑을 품고 있으나 영화는 발랄하고 상큼하며 경쾌하다. 죽음이 주요한 모티프로 작용하면서도 정서는 여느 청춘영화나 다름 없다.

장례식장 가는 게 유일한 사회활동이자 낙이었던 에녹은 애나벨의 인도로 세상 밖에 다시 발을 디디고, 애나벨은 짧은 삶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마감한다. 죽음을 너무 일찍, 많이 알아버린 그들이기에 가능한 사랑. 불멸이나 영원이란 단어와는 어울릴 수 없는 인간의 삶을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인연이리라.

죽음이 일상인 주인공들에게 죽음은 하나의 즐길 거리이며 주요한 사랑의 매개다. 에녹에게만 보이는 일본 청년 유령 히로시(카세 료)는 에녹과 애나벨의 가교 역할을 한다. 에녹이 분필로 교통사고 사망자 형상의 그림을 도로 위에 그린 뒤 애나벨이 그 옆에 누우면 애나벨의 몸 형상을 또 그리는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눈부신 장면이다. 불치병과 사랑과 이별 등 멜로영화의 칙칙한 상투어구들을 영화는 그렇게 밝고 새롭게 변주해낸다. 이별 앞에 눈물 대신 웃음 짓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눈가가 물기로 젖어 든다.

강렬하지 않으나 여운이 길다. 반 산트의 영화들 가운데는 범작이라 할 수 있겠지만 늦가을 관람용으론 나쁘지 않다. 포틀랜드의 아름다운 가을과 보석 같은 음악만으로도 찬바람에 닫힌 마음의 빗장이 열릴 듯. 2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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