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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부산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최초 3관왕 '돼지의 왕' 만든 연상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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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부산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최초 3관왕 '돼지의 왕' 만든 연상호 감독

입력
2011.10.2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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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다, 대단하다, 마음을 움직인다. 11월 3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중학교 교실을 무대로 가난하고 무력한 또래들을 잔혹하게 짓밟는 이들과 그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괴물이 되어가는 이들의 출구없는 세계를 가감없이 그려내서 폭력이 구조화하는 한국사회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나온 진정한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 할 만하다. 실사영화와 함께 견줘봐도 올해 나온 영화 가운데 손가락 안에 꼽힐 작품이고 대한민국 영화사를 통틀어도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영화에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넷팩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CGV무비꼴라쥬상을 수여했다. 애니메이션 최초의 3관왕. '돼지의 왕'을 만든 연상호(33)감독을 만났다.

_ 어떻게 이런 애니메이션을 만들 생각을 했나요?

"중학교 때 체험이 모티프가 됐어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신구중학교를 다녔는데 가난한 종석이가 있어 보이려고 누나의 게스 바지를 입고 왔다가 여자 거라는 이유로 조롱을 당하고 바지가 찢기는 일이나, 약한 애들을 편들려던 찬영이가 오줌을 뒤집어쓴 것은 실화 그대로입니다. 등장인물도 중학교 때 앨범에서 거의 그대로 따서 이름까지 비슷해요. 여기에 주변에서 취재한 다른 에피소드를 섞었는데 '돼지의 왕'이 되는 철이만 완전 창작입니다. 그런 아이는 실제로는 학교에 없어요. 철이 얼굴은 강동원이 모델인데.(웃음)"

_ 가해자인 친구들이 보면 항의하겠어요.

"아마 자기라고 인식을 못할 거 같아요. 자기와 똑같은 이름에다 똑같은 에피소드를 하고 있어도 걔네들 시선에서는 정당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달리 기억하고 있겠지요."

_ 그럼 연상호 감독은 누구로 나오나요?

"배경에 나온 그 어느 누구였다고 생각해요. 저는 가난한 집 아이도 부잣집 아이도 아니고 평범한 아이였는데 두루두루 잘 지냈어요. 그날 집에 가는데 걔가 '상호야' 하고 부르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아는 척을 못하겠는 거예요. 이미 여기는 찍힌 그룹인데 아는 척을 하면 내가 이 그룹으로 카테고리가 나눠질 거라는 생각에 모른 척을 하고 가는데 뒤에서 '아우 시키들, 다 똑같은 시키들' 하고 자기들끼리 그러는데 그게 마음에 계속 남았어요."

_ 고등학교가 아닌 중학교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고등학교는 수색에서 나왔는데 고등학교 때는 그런 일이 없었고 강남을 무대로 그리고 싶었어요. 제가 강북으로 고등학교를 간다니까 옆에 있는 친구가 이래요. 강북은 '저기 지우개 좀 빌려줄래' 그래서 '어, 지우개 없는데' 그러면 '없어?' 그러면서 칼로 (옆구리를) 훅 쑤신다는 거예요.(주위 웃음) 그런데 저는 그걸 진짜로 믿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부자와 가난한 아이, 공부 잘하는 애와 못하는 애들 사이에 위화감이 전혀 없었어요. 강남에 있을 때는 두 그룹이 대화 자체를 안 해요. 고등학교 가니까 서로 잘 어울려 놀더라고요. 공부를 잘하는 애도 못하는 애들이랑 어울려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거기서 굉장히 쇼크를 받았어요. 이게 나이 때문인가, 지역 때문인가 궁금했는데 대학을 갔더니 대학에는 온갖 사람들이 다 모였잖아요. 다 잘 어울리니까 이게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가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술을 먹는데 그 지우개 같은 편견을 갖고 있는 친구를 봤어요. 제가 중학교 때 진짜로 그걸 믿었는데 그 상태로 그냥 어른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잘 지낼 뿐이지 모르는 계층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여전히 갖고 지내는 거지요. 얘네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서로 안 만나요. 그러니까 그런 차이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거지요. 저는 예술을 하니까 아주 잘사는 사람도, 아주 못사는 사람도 만나니까 서로가 계속 그런 편견 속에서 사는 모습을 많이 보았어요. 그러면서 '돼지의 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 발육이 큰 애는 고등학생 같고 작은 애는 초등학생 같고, 계급 차가 선명하게 보일 수 있겠다, 그런 생각도 있었고."

_ 약자들의 세계를 종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다뤘어요.

"지배계층의 공허함이라든가 권력의 공허함, 지배층의 구조를 영화에서 많이 다루는 편이거든요. 반면 밑에는 굉장히 표면적으로 낭만적으로 다루잖아요. 하류계층의 감정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돼지의 왕'에서는 오히려 지배층의 애들은 단순하게 나쁜 애들로만 그리고 밑으로만 잡아서 들어갔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이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가해자는 악마고 피해자는 천사로만 그리면 악마가 천사를 괴롭힌다고 생각을 하지 그게 자기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합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정당성으로 행동을 하는데 그것이 구조 안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거, 그 구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게 제가 할 일이라고 봤어요. 제목이 '돼지의 왕'이고 계급을 다룬다는 인터뷰가 나가니까 사람들이 이 영화를 약자를 대변하고 상류층을 비난하는 영화로 생각할까봐 걱정했거든요. 이건 어찌 보면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약자들의 어두운 세계를 그렸으니까요. 그런데 관객들도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다 알더라고요."

_ 뭘 말하고 싶었어요?

"이 사람들이 느끼는 감성과 체험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어요. 관객들이 영화관에 있는 한시간 반 동안만이라도 이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체험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진짜 가난하고 진짜 비루하고 어떻게 할 수 없이 거대한 벽에 부딪힐 때의 느낌. 그런 느낌을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_ 왜요?

"느끼면 움직일 수 있으니까. 영화를 보고 곧바로 움직일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뭔가를 체험하면 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걔들이 '다 똑같애'라고 말했을 때 제가 느꼈던 것…. 금방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무슨 판단을 하게 될 때 그 때의 기억들이 적용이 되는 거지요. 그건 아주 미묘한 차이일지 몰라도 아주 큰 움직임이 된다고 생각해요. 실은."

_ 그래서 2004년에 애니메이션 창작집단인 스튜디오다다쇼를 만들고서는 직원들에게 아침 10시 출근, 저녁 7시 퇴근에 월급까지 잘 챙겨주게 되었군요.

"누군가를 착취하는 구조로 작품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동화맨들은 임금을 작업량에 따라 받습니다. 보통 한 장에 1,400원인데 하루 종일 그려봐야 20장 정도 그려요. 수정 지시 나면 버린 것은 안 치고요. 그러면 신입 동화맨은 한 달에 60만원 정도 가져가는데 말도 안되지요. 2003년에 '지옥'이 일본 쇼트쇼츠 단편영화제 상도 받고 작품이 계속 들어오니까 제작사를 만들었어요. 직원이 많을 때는 7명, 다달이 임금만 1,000만원쯤 들어가요. 2006년에는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많이 만들었고 2007년에는 '사랑은 단백질'이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 지원을 받았어요. 2008년에는 게임회사 외주작업까지 했어요. 그런데도 '돼지의 왕'이 2008년 말에 콘진 지원 공모에서 떨어지니까 더 이상 회사를 유지할 수 없더라고요. 마지막 월급 정산해주고 보니까 통장에 0원 있었어요. 해산을 하면서 스태프들이랑 술을 한잔 하는데 스태프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다다쇼의 이상에 나도 공감했다. 더 적게 받으면서 더 오래 다다쇼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당신이 이런 조건을 제시하고 일을 하다가 이렇게 엎는 것은 결국 당신만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냐'고. 그래서 다시 시작한다면 더 머리를 많이 쓰고 누군가를 착취를 해야 한다면 더 강한 쪽을 착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돼지의 왕'은 청강문화산업대와 산학협력을 해서 1년 동안 기자재와 학생들 20명을 동화맨으로 지원했으니까 청강대를 착취한 셈이네요.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이번에도 월급제로 했고 다달이 100만원쯤 줬어요."

_ '돼지의 왕'은 굉장히 어렵게 나왔네요.

"시나리오는 2006년부터 준비했는데, 애니메이션은 투자가 안되니까 작품을 만들 수가 없어요. 콘진 공모에 떨어졌을 때 영화사 한 군데서 실사영화 해보지 않겠느냐 이야기가 왔는데 주인공이 중학생이니까 스타 마케팅이 안 된다고 엎더라고요. 영화사에서 다른 것을 해보자고 해서 신앙의 갈등을 스릴러로 다룬 '사이비'라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1년을 보냈어요. 이것도 엎어질 수 있겠다 싶어서 '돼지의 왕' 작업을 혼자서 따로 했어요. 2010년에 '사이비'도 엎어지고 나서 보니까 '돼지의 왕' 배경 1,200장 가운데 600장이 완성되고 러닝타임도 15분 정도를 만들어놓은 거예요. 그래서 그걸로 KT&G상상마당에서 하는 독립영화지원제도에 신청을 했지요. 상상마당 지원금은 1년 만에 완성하는 게 조건이라서 보통은 애니메이션이 신청하기 힘들거든요. 결국 1억3,000만원은 상상마당에서, 2,000만원은 서울애니메이션센타에서 지원을 받아 완성했습니다."

_ 돈이 많았다면 보완하고 싶었던 게 있었나요?

"아우, 많지요. 그런데 부산에서 만난 해외 게스트는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내용과 완벽하게 맞는 액션과 그림을 갖고 있다, 많이 움직이지 않는데 그게 오히려 이야기를 강렬하게 만든다.' 흐음(웃음), 돈이 더 많이 있었으면 많이 움직였을텐데."

_ 애니메이션 지원제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겠네요.

"심형래로 대변되는 '몰빵' 지원제를 없애야 합니다. 콘진이 매년 100억원 가까운 렝?쓰는데 유명한 이름에 몰빵을 해요. 5억원 정도면 만드는 사람들을 착취하지 않고도 뭔가를 만들 수 있는 감독들이 많거든요. 30억원이면 우리가 매년 장편 애니 다섯 편씩 볼 수가 있어요. 그런 게 쌓여서 문화가 사는 겁니다."

_ '얼음처럼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뒹구는 세상이다', 마지막 대사지요. 얼음처럼 차가운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것인가요?

"바뀔까요?(침묵) 켄 로치 감독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 분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요, 바뀔 때까지 만든다.(웃음) 저도 그게 정답인 거 같아요. 죽을 때까지 하다가 제가 죽으면 또 누가 이어가고 하겠지요."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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