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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사후/ 카다피 빈집 떠돌며 버려진 쌀로 연명…초라한 도피행각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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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사후/ 카다피 빈집 떠돌며 버려진 쌀로 연명…초라한 도피행각 드러나

입력
2011.10.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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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말년은 그의 비참한 최후만큼 초라했다. 추적을 피해 빈집을 떠돌며 버려진 쌀로 끼니를 연명했고, 전기와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에서 목숨을 부지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23일 카다피의 마지막 은신처였던 시르테 콜롬비아 거리에 있는 단층주택 내부를 공개했다. 휑한 거실 벽에는 카다피의 사진이 걸려 있고 텅 빈 방에는 매트리스와 꽃무늬 실크 조끼, 셔츠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전기가 끊긴 부엌에는 토마토 소스가 담긴 병과 인스턴트 식품이 떨어져 있어 궁핍했던 카다피의 도피생활을 짐작케 한다.

카다피의 마지막 2개월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카다피의 최측근인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 리비아 인민수비대 사령관은 22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갖고 카다피의 말년을 전했다. 그는 카다피가 8월 21일 수도 트리폴리가 시민군에 의해 함락된 직후 4남 무타심, 수행원 10여명과 함께 차량으로 정부군 거점지역인 타루나와 바니왈리드를 거쳐 시르테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카다피는 시르테에서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3, 4일을 주기로 빈 집과 아파트 등으로 거처를 옮겨 다녔다. 빈 집에 남아있던 쌀과 파스타로 직접 음식을 해먹었다. 전기와 물이 수시로 끊기자 "왜 전기가 안 들어오지?" "물은 왜 없지?"라고 측근에게 묻기도 했다.

이브라힘은 카다피가 "나의 용기가 나를 쓰러뜨렸다"며 후회하는 기색도 보였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권력을 이양하라고 설득했지만 카다피는 "이 곳은 내 조국이다. 나는 1977년 권력을 리비아 국민에게 모두 넘겼다"고 거부했다. 외부와의 연락은 거의 차단됐다. 컴퓨터나 전화 사용이 제한됐다. 도피생활이 길어지자 지루해진 카다피는 틈틈이 코란을 읽었다. 위성전화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투쟁을 독려하는 육성메시지를 시리아 방송사에 보내기도 했는데 이 위성통화는 자신의 위치를 서방에 노출시키는 결정적인 실착이 됐다.

2주전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카다피 일행은 그의 생가가 있는 시르테 외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20일 오전 8시께 시르테 중심부를 빠져나온 40여대의 차량행렬은 출발 30분 만에 NATO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이브라힘은 "어딘가 세게 부딪힌 후 정신을 잃었는데 깨보니 병원이었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카다피는 도로 밑 콘크리트 배수관에 숨어 있다 시민군에 발각돼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스카이뉴스는 목격자를 인용해 카다피가 "원하는 대로 돈과 금을 줄 테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시민군이 그를 끌어내려고 하자 카다피가 "내가 너희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말했다는 한 병사의 증언을 실었다.

과도국가위원회는 "압송 과정에서 정부군과의 교전이 발생했고 카다피가 이 과정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생포한 카다피를 시민군이 때려 죽였다' '경호원이 총으로 쐈다' '잡히기 전에 이미 숨졌다'는 등의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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