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 어떨지는 이제 확실해졌다. 지난 1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렸던 식당주인들의 집회(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는 2012년 한국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생생한 예고편이었다.
이 집회를 리뷰하자면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집회 그 자체. 목표했던 10만명은 못 채웠어도 식당주인들이 이렇게 모였다는 건(주최측 추산 7만명) 정말 드문 광경이다.
작은 동네 식당이라면 전형적인 영세자영업이다. '먹는 장사는 손해보지 않는다'는 지금은 더 이상 통용되기 힘든 옛말에 끌려 가게를 차렸고, 인건비 아끼려고 온 가족들이 식당 일에 매달리는, 그런데도 임대료조차 내기 힘든 딱한 처지의 서민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자 농민은 아니다. 생활고로 따진다면 못지 않게 힘겹지만 조직화되어 있지도 않고 정치색도 없으며 과격하지도 않다. 목소리를 낸 적도, 거리로 나온 적도 거의 없다. 비록 대형 운동장안에서 피킷과 구호 정도로 끝난 '온건한' 시위였지만, 이들이 가게 문을 닫고 혹은 카운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 채 단체행동에 나섰다는 건 예삿일이 아님엔 틀림없다.
침묵하던 식당주인들의 반란
두 번째 포인트는 정치인들의 가세다. 마침 서울시장선거(26일)를 앞둔 터라 잠실종합운동장에는 여야 후보가 총집결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야권단일후보인 박원순 후보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음식점주인들의 주장에 대해선 지지를 약속했고, 서울시장 선거에선 한 표를 부탁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정치인들이 찾아가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선거가 임박하지 않았다면 이런 집회에 이 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모습을 드러냈을까 싶다. 카드사들이 동네 분식점에서 받아가는 수수료가 골프장보다도 높다는 것, 음식점이 구입하는 농산물원재료 가액의 일부만큼 부가가치세에서 돌려주는 제도(의제매입세액공제)가 일몰형태로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집회에 오기 전 알고는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가게 밖으로 나온 식당주인들, 그리고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정치인들. 두 번의 선거를 치러야 할 내년 한국의 모습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줄 장면은 없을 것이다. 4월 총선을 거쳐 12월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각종 집회와 시위가 수없이 이어지고, 그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치인들을 자주 접하게 될 게 분명하다.
좋게 보자면 선거철은 홀대 받던 유권자가 모처럼 대우 받는 시기다. 목소리를 내고 원하는 바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면 선거 때 해결하는 게 확실히 경제적이다.
하지만 사익(私益)과 공익(公益)이 항상 조화를 이룰 순 없는 법. 재정적 이유든, 다른 이익집단과 형평 차원이든, 혹은 도덕적 해이 우려 때문이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들까지도 '유권자의 이름으로' 포장돼 쏟아져 나온다는 게 문제다. 주장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문서나 성명보다는 집회나 가두시위를 선호할 것이고, 현장분위기나 경찰대응에 따라선 폭력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과연 내년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까. 아직 대선이 1년도 더 남은 시점인데도, 말없던 식당주인들이 몇 만 명씩이나 모이고 그래도 먹고 살만한 주유소 주인들까지 피킷을 드는 판인데, 1년 내내 선거를 치러야 할 내년엔 대체 얼마나 많은 단체 협회 중앙회 연맹 등이 운동장으로 광장으로 때론 거리로 몰려나올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잘못된 공약의 악순환
그 때마다 정치인들은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리고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만큼 요구를 수용할 것이다. 지킬 수 없는 공약들은 예외 없이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집권을 해도 잘못된 공약은 절대 현실화되지 못한다. 감세가 그랬고 동남권 신공항이 그랬다. 유권자에겐 배신감으로, 정치인에겐 신뢰추락으로, 모두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우린 또 이런 악순환을 겪어야만 할 까. 내년이 걱정스런 이유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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