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8시50분 서울 성수대교 북단에 위치한 위령비에 한 명의 어른과 3명의 청소년이 엄숙한 표정으로 묵념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성희진 김유리(18)양 등 무학여고 2학년생 3명과 인솔교사인 신종순씨. 성수대교 붕괴사고 17주년을 맞은 이날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꽃 같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선배 언니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후배들이 찾은 것이다.
이들이 위령비에 도착하기 전 희생자 유족이 다녀간 듯 제단 앞에는 노란 국화로 장식된 화환 2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김양 등은 추도 화환을 제단에 놓고 묵념을 한 뒤 비문에 새겨진 시를 읽었다. 사고가 나던 해에 태어난 이들이어서 그 엄청난 사고가 가슴에 와 닿는지 알 수 없지만 굳은 표정에는 안타까움과 비장함이 스며 있었다. 지난 6월 학교 1층 계단에서 넘어져 척추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었던 성양은 "어린 나이에 아픔과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난 언니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40분 성수대교의 상판 48m가 무너져 무학여고생 5명과 무학여중생 3명을 포함해 시민 32명이 숨진 붕괴사고 이후 무학여고는 매년 단체로 희생자 위령비를 방문, 헌화하고 고인들을 기억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 20일 1, 2학년생들이 각각 2박3일 일정으로 평창과 제주도로 수련회와 수학여행을 떠났다. 이로 인해 올해는 학생회장단이 방문하지 않고 개인적인 사유로 수학여행을 못 간 학생들이 참석했다. 학교 측은 "지난해 수학여행과 수련회 계획을 미리 짜놓았는데 학사일정을 변경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위령제에 많은 학생들이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위령비만이 그날의 참상을 증언하고 세인들의 뇌리에서는 세월과 함께 점점 잊혀지고 있지만 유족들이나 관련됐던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기억이자 영향이다.
사고 때 숨진 이승영(당시 21세)씨의 어머니 김영순씨는 서울교대생인 딸을 기리기 위해 서초구 반포동 남서울교회에 승영장학회를 만들었다. 승영씨 죽음에 대한 국가 지원금 2억5,000만원을 장학기금으로 쾌척했고 이후 1인당 200만원씩 모두 150명 정도가 승영씨의 음덕을 입었다. 김씨는 몇 년 전 선교사업을 위해 한국을 떠나 러시아에서 생활하고 있다.
당시 경찰의 날 우수중대 표창을 수상하기 위해 본대로 이동하다 사고를 당한 뒤 부상한 상태에서 헌신적인 구조활동을 벌인 한 의경은 후에 경찰관이 돼 그날의 아픔과 회한을 씻었다.
서울경찰청 제2기동대 상황부실장으로 당시 사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접했던 송파경찰서 최준영 수사과장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부실공사로 인한 인명사고가 일어나고 있다"며 "성수대교의 교훈마저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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