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의 컬처스페이스 엔유 극장. 대학로 공연장 대부분이 문을 굳게 닫은 평일 낮인데도 이곳은 관객들로 북적였다. 창작 뮤지컬 '막돼먹은 영애씨'(11월 18일 개막)의 특별 이벤트 '월차 캠페인-직장인 속풀이 토크쇼'를 보러 온 이들이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진정한 애국자, 직장인 여러분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뮤지컬 넘버도 공개하고 여러분과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눠 보려고 합니다."뮤지컬에서 주인공 이영애를 괴롭히는 박과장 역을 맡은 개그맨 박성광의 인사말에 객석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다.
트위터 이벤트 등에 뽑힌 남녀 직장인 100여명은 월차 반차 조퇴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행사장을 찾았다. 상사와의 갈등, 승진, 정리해고 등 샐러리맨의 희로애락을 담은 작품인 만큼 토크쇼에선 관객을 직접 무대 위로 불러 올려 직장생활의 고민을 듣고 출연진과 함께 상황극을 꾸며 보는 순서도 마련됐다. 김주영(23)씨는 "토크쇼를 보고 나니 이 뮤지컬이 바로 내 이야기를 풀어낸 것 같아 기대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능 콘텐츠로 자리잡은 토크쇼가 TV 밖으로 영역을 넓혀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뮤지컬 등 공연을 앞두고 토크쇼 형식의 특별 이벤트를 열어 마케팅에 활용하는가 하면, 출판계에서도 책 출간 전후 저자와 독자의 대화의 장을 마련해 눈길을 끌고 있다.
문화계에 불어닥친 토크쇼 바람은 시대의 화두가 된 '소통'과 '공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관객이나 독자는 이제 완성된 작품을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제작 과정과 그 뒷얘기에까지 관심을 갖는다. 관객(독자)이 배우(저자) 등과 어우러져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노는 난장의 경험은 참가자들만의 만족을 넘어 입소문의 진원지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 토크쇼 마케팅이 가장 활발한 곳은 뮤지컬계다. '막돼먹은 영애씨'의 제작사 CJ E&M 관계자는 "뮤지컬 마니아뿐 아니라 잠재 관객 발굴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8일 시작하는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개막을 보름 앞둔 지난 11일 토크 콘서트 '우린 너무 오래 기다려왔어!'를 마련했다. 연출자와 출연 배우들이 나와 삽입곡을 부르고 캐스팅 뒷이야기와 연습 중 에피소드 등을 팬들과 공유했다.
2006년 초연 이후 41만명 이상이 관람한 대학로 대표 소극장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2007년 관객 팬서비스 차원에서 한 차례 열었던 토크쇼 '훈남파티'를 지난해부터는 아예 연중 행사로 정례화했다. 무대 밖 배우들의 색다른 모습을 접한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지난달 열린 올해 행사는 230석 티켓이 판매 시작 5분 만에 매진됐다.
출판계에 유행하는 '북콘서트'를 통해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이 시대 청춘의 멘토로 추앙 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를 쓴 김난도 서울대 교수나 신간 을 낸 '시골의사' 박경철씨의 북콘서트에는 그야말로 '인파'가 몰려든다.
이기형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정치, 경제 등 사회 전 분야가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에 빠진 독자들의 깊은 고민이 반영된 현상"이라며 "북콘서트는 저자와 독자가 지근거리에서 생동감 있게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불안을 치유하는 멘토링의 장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콘서트를 기획한 공연기획자 탁현민씨도 "소통의 결핍을 느끼는 대중이 북콘서트 등에 참여함으로써 위안을 얻고 있다"며 "시대상을 반영한 흐름이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학 분야의 토크쇼인 '낭독의 밤'은 책 읽기를 보다 다채로운 경험으로 확장하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소설가 은희경씨의 출간 이후 올해 초 가수 요조, 키비와 함께하는 북콘서트를 열었던 신정민 문학동네 기획마케팅부 차장은 "북콘서트는 저자 사인회 같은 단순 접촉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독자들이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새로운 경험을 더해 감동을 얻고 가는 자리"라고 말했다.
문화계의 토크쇼 바람에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관계 맺기에 주목한 온라인 서비스가 확산하면서 기획자들이 문화 소비자의 욕구를 빠르고 쉽게 읽게 된 영향도 크다. 김민정 문학동네 편집팀장은 "독자들은 온라인 상에서 작가들을 접하면서 환상보다는 친밀감을 갖고 망설임 없이 낭독의 밤 등의 행사를 찾게 되고 또 작가들은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리듬감 안에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방송에서 드러난 토크쇼 범람의 폐해가 그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상업성이 짙은 뮤지컬의 경우 과도한 상업적인 의도로 토크쇼를 꾸려갈 경우 배우들이 각기 다른 토크쇼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재활용하거나 허구를 사실처럼 潔薩銖求?등 제작상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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