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적장애인도 참말로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송파지적장애인당사자대회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적장애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솔직하게 토해 낸 장이었다. 이날 행사가 주목받은 또 하나의 이유는 대회 준비부터 개최까지 모든 일을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주도했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 중심에 서영우(45ㆍ지적장애2급)씨가 있었다. 이번 대회 실행위원장인 서씨는 장수현(37·지적장애2급) 문수현(21·지적장애3급) 유구상(23·지적장애3급) 장유진(22·자폐성장애2급) 강주영(23·지적자폐2급)씨 등 6명으로 구성된 실행위원회 회의를 지난 5월부터 20여 차례 주재하며 '피플 퍼스트 선언문' 작성, 대회 명칭과 일정 결정, 역할 분담 등의 준비를 도맡았다.
한국에서 지적장애인은 소통 능력 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다른 장애인들과 달리 스스로를 표현하고 자신들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지적장애인이 주도하는 피플 퍼스트 운동이 익숙한 개념이다. 1973년 미국 오레곤주에서 '지능이 낮은 사람도 장애인이 아닌, 인간으로서 먼저(피플 퍼스트ㆍPeople First) 대우받고 싶다'는 움직임이 인 것이 소중한 출발점이 됐다. 이후 1991년 캐나다 미국 등 세계 10여개 국에서 잇달아 피플 퍼스트 운동이 시작되고 조직도 꾸려졌다. 일본은 1994년부터 매년 피플 퍼스트 전국대회를 열고 있다. 송파지적장애인당사자대회는 바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피플 퍼스트 운동을 한국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서씨가 이 행사를 생각해 낸 것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2008년 일본 도쿄 대회에 참석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지적장애인이 모두 모였는데, 뭐 잔치터예요. 행사를 모두 같이 만들고, 모두 같이 즐기고, 억눌린 얘기 확 털어놓고." 그는 3년 전부터 지적장애인 자조모임을 이끌면서 이번 행사를 준비해 왔다.
최근 우리 사회를 들끓게 만든 영화 '도가니'의 원작소설(공지영 작)도 서씨가 이 행사를 준비하게 된 이유의 하나였다. "인터넷에서 소설을 봤어요. 참 아팠어요. 그런데 우리 지적장애인은 청각장애인보다 더 당해요. 자기를 지킬 힘이 더 떨어져요. 그래서 같이 힘을 모아야 해요."
이날 행사에서는 '우리를 당신의 기준에 맞추지 말라.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피플 퍼스트 선언과 지적장애인들로 구성된 난타팀인 꿈두드림의 공연 등도 무척 와 닿았지만, 더 처절했던 것은 서씨의 발표였다. "교회에서 지적장애인이라고 엄청 당했어요. 선한 사람 모였다는 교회에서요. 이거 안돼요." 어눌한 발음으로 울분을 토한 서씨의 발표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마운 비장애인도 많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직원 강양희씨같은 이가 그렇다. 강씨는 시점 감각이 부족한 지적장애인들이 이번 대회 일정에 맞춰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세세한 것들을 챙기고 섭외와 홍보전단지 제작도 도와줬다. 박찬오 센터 소장도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신씨는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국내 지적장애인 피플 퍼스트 조직의 태동을 소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조직을 통해 자신과 같은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운동에 나서려 한다. 그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활동보조원제(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사람을 쓰면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 개선. 정부는 지체장애인에게는 1개월 최대 450시간의 활동보조 시간을 책정한 데 비해 지적장애인은 평균 100시간 정도밖에 지원하지 않는다.
신씨는 장애인학교를 나온 뒤 일반 고교에 들어갔지만 잦은 발작(지적장애인은 간질 발작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과 그 치료약 복용에 따른 무기력증 때문에 중퇴하고 말았다. 부모가 어렵게 장사로 벌이를 하는 형편이라 자기 벌이는 스스로 하고 싶지만 고교 중퇴 학력으로는 이력서를 내밀어도 코웃음만 되돌아온다. 결혼도 마찬가지, 선을 봐도 번번히 퇴짜만 맞았다. "내 일을 하면서 아내와 행복하게 사는 꿈을 꿔요. 그런데 그게 그냥 꿈이에요. 가슴이 아프네요. 그래서 나같이 못난 사람도 같이 사는 나라 만들고 싶어요."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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