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에 세든 사람 가운데 월세를 내는 사람의 비율이 전세로 사는 사람의 비율을 조만간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월세 시대'인 셈이다. 이는 단순히 월세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국내 부동산 시장의 메커니즘 자체가 혁명적 변화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뜻한다. 이를 두고 경제발전에 따른 합리적 진화라는 긍정론과 세입자에게 모든 불이익이 전가되는 양극화적 퇴보라는 시각이 엇갈린다. 월세를 둘러싼 복잡계적 상황의 진실은 뭘까.
부동산 중개업체인 부동산114가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국 임대차 가구 중 월세가 49.69%, 전세가 50.31%였다. 2005년 월세 비율이 45.85%였던 것과 비교하면 월세가 4%포인트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현 추세 대로라면 얼마 안 가 월세가 절반을 넘어서게 될 전망이다.
수도권은 아직 전세가 많은 편이지만 지방은 이미 월세가 전세를 추월한 곳이 많다. 2005년에는 월세 비율이 60%를 넘은 지역이 단 2곳이었지만 지난해 조사에서는 제주(83.72%) 전북(64.26%) 경북(63.97%) 경남(61.68%) 강원(61.59%) 광주(60.81%) 울산(60.28%) 등 7곳으로 늘어났다.
한국에서 전세 제도가 시작된 것은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이후 근대적 계약 방식이 도입되면서부터다. 그러나 현재적 의미로서 전세가 자리잡게 된 것은 산업화 이후다. 1960~70년대 모든 자본은 수출산업에 집중됐고 가계는 헐벗은 상황이었다. 이 시기 도시 가계의 중심은 시골에서 이주한 산업근로자나 소상공인이었는데, 이들의 영세성은 당시 가계의 저소득 상황을 웅변해 준 표징이다. 이들은 집을 살 때 돈이 없어 세입자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아 메웠다. 집을 마련할 돈이 있는 경우라면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보증금을 금융 투자해 소득을 올렸다. 한 마디로 가난한 집 주인이 더 가난한 세입자를 착취하는 구조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이 같은 전세 형태의 임대차는 최근 수년 간 급격히 월세로 바뀌고 있다. 그 동력은 뭘까.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가장 큰 이유를 전세대란으로 꼽는다. 임대차 공급이 모자라 하루하루 전세가가 상승하면서 공급자가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됐고, 교섭력이 커진 공급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임대차 계약을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에게 요구하게 됐다. 실제로 월세를 연이율로 계산하면 7% 정도인데 전세는 그에 못 미치는 4~6%다.
오랜 기간 집값이 오르지 않아 식을 대로 식은 주택시장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공급자가 저조한 집값 상승을 보전하기 위해 세입자에게 월세라는 형태로 추가 착취를 한다는 것이다.
저금리 역시 공급자적 측면에서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연 3%의 저금리가 장기화하다 보니 전세보증금을 금융권에 넣어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결국 월세 전환을 추진하게 된다는 말이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 것도 작용하고 있다. 노후 자산으로 주택 1채를 소유한 것이 평균적 초상인 이들은 은퇴 후 집을 세줘서 얻는 것 외에는 별다른 소득이 없기 때문에 월세의 유혹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빈곤의 구조화로 당장 전세보증금 정도의 돈조차 없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이 월세가 늘고 있는 핵심적 이유다. 비싸더라도 월세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싱글족 증가와 만혼 풍조로 인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도 월세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월세 시대의 도래를 놓고는 부정론과 긍정론이 강하게 엇갈린다. 이승렬 사회빈곤센터 소장은 "세입자들이 돈이 없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부담하는 월세로 바꿔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전세를 유지하는 집 주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부동산 중개업자 김원식씨는 "전세는 월세에 비해 왜곡된 가격구조를 갖고 있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제도"라며 "월세만큼 합리적인 제도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전세 우대제도가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서민은 전세보증금이 없어 전셋집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며 "월세는 돈이 없는 서민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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