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자기공명영상) 등의 영상검사비(수가)를 낮춘 보건복지부의 조치에 대형병원들이 불만을 품고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법원이 이례적으로 병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5월부터 인하됐던 영상검사비가 상급심에서 복지부가 승소하기 전까지는 원래대로 복귀돼 의료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됐다. 복지부의 부실한 행정처리 능력이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김홍도 부장판사)는 21일 아산병원 등 45개 병원이 복지부의 영상검사비 인하 고시를 취소하라며 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령상 복지부가 영상장비 수가를 직권으로 조정하려면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행전위)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절차를 거치지 않아 처분이 위법하다"고 밝혔다.
병원들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도 받아들여져 영상검사비는 곧바로 인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인하 고시의 효력만을 정지한 것이어서 이미 시행된 인하 가격에 대해선 소급적용 되지 않는다.
법원 판결에 복지부는 당황하는 모습이다. 이스란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재판부가 언급한 행전위와 관련된 고시 규정은 '행전위의 평가를 거쳐 결정 또는 조정할 수 있다'고만 돼있어 관행상 이를 거치지 않아왔다"며 "재판부가 지적한 절차상 하자를 보완하고 관련 규정도 더욱 명확하게 개정하는 등의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지부가 소송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병원단체들이 소송을 유명 법무법인에 맡기는 등 초기부터 재판이 만만치 않으리라 예견돼왔기 때문이다.
최근 복지부가 미숙한 행정조치로 혼란을 초래한 일이 잇따랐다. 지난 8월에는 조기위암 내시경절제술(ESD)에 쓰이는 칼 값을 낮췄다가 의료계가 수술 중단으로 맞서자 한달 만인 지난 달 말 가격을 올리고 수술 허용 범위도 넓혔다. 지난 7월 리베이트로 적발된 제약사들에 취했던 약값 인하 조치도 행정법원이 제약사들의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받아들여 제동이 걸렸다.
김태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복지부는 업무상 관련된 이익단체들이 많아 정책 결정과 추진 과정에서 더욱 치밀하고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한 부처"라며 "관련 단체가 반발한다고 정책 결정을 뒤집거나 재판부에 충분히 정당성을 설득할 수 있는 사안에까지 부실한 준비로 패소하는 일이 생겨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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