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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눈먼 자들의 나라

입력
2011.10.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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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체는 뭐니?”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받고, 또 던진다.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운 스파이가 아닌데도, 서로를 향해 어느 편인지를 묻고 확인한다. 그런 피곤함이 싫어 침묵을 택하면, 어김없이 ‘회색인’이라는 냉소가 따라오게 된다.

선거 시즌이 되면 “너는 어디 쪽이냐”는 질문은 더 기승을 부린다. 서울시장 보선을 앞둔 지금도 그렇다. “참여연대가 대기업을 때리고, 아름다운재단이 기부금 받았는데, 박원순이 뒤에서 다 조종했대.” “세상에나! 나경원은 연 회비가 1억 원이나 되는 피부 관리를 받는다고 하더라”는 등 곳곳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 상대는 동지를 만난 양 우호적이 되고, 고개를 갸웃하면 분위기는 갑자기 썰렁해진다.

어떻게든 편을 가르는 사회

참으로 불편한 사회다. 혹자는 이념적 관점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고상하게 분석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 정도 수준도 아니고 그저 ‘내 편이냐, 아니냐’는 정파적 편가르기일 뿐이다. 이념은 우리 사회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라도 담고 있지만, 정파성에는 얄팍한 이해와 섬뜩한 승부만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어느 한 편이 모두 옳고 다른 한 편이 모두 나쁜 세상은 없다. 그 이치를 터득하지 않은 자들이 세상을 주도하면, 정파성과 편가르기가 보편적 가치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해보자. 2006년 초의 일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송민순 통일외교안보실장(현 민주당 의원)을 불렀다. 호출 이유는 한미FTA를 추진하느냐, 마느냐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송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두 사람은 최근 100년 이전에는 중국이 주변 국가들을 사실상 지배했고, 그 중국이 다시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거센 조류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미국이라는 강력한 닻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한다.

반미성향으로 알려진 노 대통령이 한미FTA를 추진한 배경에는 평소 우호적으로 대했던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경계심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세력은 노무현하면 그저 ‘좌파’로 낙인 찍었고 진보세력은 ‘왼쪽 깜빡이를 켠 우회전’이라고 폄하했다. 국가지도자가 때론 자신의 이념보다 국익의 관점에서 정책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을 외면했던 것이다.

대통령까지 내 편, 네 편으로 낙인 찍는 풍토에는 정치의 책임이 가장 크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언론 등 지식인 사회도 한 몫 한다고 본다. 정당들이야 선거에서 이겨 정권을 잡으려 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편 가르기가 불가피하겠지만,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더 설쳐대는 것은 심판의 편파판정처럼 볼썽사납고 걱정스럽다.

걱정스러운 언론의 정파성

물론 그것은 ‘너의 문제’만이 아닌 ‘나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나 잘해라”는 비난이 두려워 침묵하기에는 정파적 편 가르기가 너무 심각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북상할 때 노무현 대통령은 ‘인당수 사랑가’라는 뮤지컬을 봤다가 언론의 호된 비난을 받고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다. 하지만 구제역으로 가축 10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되고 공무원들이 과로로 숨졌던 금년 초 이명박 대통령이 뮤지컬 ‘영웅’을 봤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울시장 보선 후보들에 대한 언론 보도도 그렇다. 보수언론은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의 양손 입양, 대기업 기부금 문제 등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파헤치는 데 더 주력하고 진보언론들은 나경원 후보의 재산이나 사생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론이 정파성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사실을 선택적으로 키우거나 배제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진보적 사실과 보수적 사실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그냥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론과 지식인들이 지금처럼 정파적 편 가르기의 첨병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가 경고했듯이 오물과 폭력, 공포가 도처에 널려 있는 ‘눈 먼 자들의 도시’, ‘눈 먼 자들의 나라’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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