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쫑/뽑으면//뽀-옥/기적소리가 난다//엄마 마늘대/아가 마늘쫑//이별하는/소리다//뽀-옥/뽀-옥/마늘 밭//슬픈/기차역'(마늘밭)
어린 날 소년은 뛰노는 날보다 누워있는 날이 더 많았다. 병명도 모른 채 고열에 시달리며 이불 속에서 10년을 앓았다. 거제도 시골엔 변변한 병원도 없었고, 어머니 홀로 밭을 일구며 자식 넷을 키우는 살림은 빠듯했다.
올해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운문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동시 '마늘밭'은 작가 하재범(65ㆍ지체장애 3급)씨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비롯됐다. 하씨는 "어릴 때는 마늘쫑 뽑는 소리가 재미있게만 느껴졌는데, 자라고 나니 '마늘대'는 엄마, '마늘쫑'은 자식처럼 생각됐다"며 "50년대에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자식을 입양 보내던 사연과 겹쳐져 이 동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하씨가 10살 때부터 앓았던 병은 결핵성 골수염. 후유증으로 왼쪽 고관절 장애를 얻었고 투병으로 변변한 졸업장 하나 없는 학력이다.
그런 그가 펜을 잡은 것은 인터넷 동호회 게시판에 살아가는 이야기, 음악 감상 등을 올리면서부터다. 독자가 생기고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고 재미가 붙은 그는 지역 언론사의 문예창작강좌를 수강하며 시와 수필을 쓰게 됐다. 그때 나이가 이미 환갑이었다. 하씨는 "문학을 알기 전에 내 인생은 그저 떠밀려온 인생이었지만, '시를 쓰게 하려 신께서 이제까지 살려 두었나보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골판지 상자에 활자를 새겨 넣는 프렉소 인쇄일을 하는 하씨는 "나의 동시로 세상에 맑고 따뜻한 기운을 많이 퍼뜨리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올해로 21회를 맞는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ㆍ미술대전 시상식은 25일 오후 종로구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에서 열린다. 하씨 외에 문학상 대상에 산문부문의 윤남석(45ㆍ지체장애 6급)씨의 '팻물', 미술대전 대상에 김병수(48ㆍ청각장애 2급)씨의 '옛님을 만나다'(서양화), 남진한(48ㆍ지체장애 3급)씨의 '안중근의사시'(서예)가 당선됐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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